“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좀 못 해도 괜찮습니다. 기회는 많아요. 삼류 대학에 가도 열심히 하면 서울대나 KAIST 대학원에 생각보다 쉽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학교가 그렇다면 기업은 기회의 문이 더 넓겠죠.”
이승섭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는 12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교육이 없는 나라>(세종서적)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대학 입시에 인생을 걸 필요가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책에서 한국의 중고등학교 교육을 강하게 비판한다. “교육을 위한 교육은 없고, 오로지 입시만을 위한 교육만 있다”고 말한다.
그가 교육 전문가는 아니다. 하지만 KAIST에서 학생처장과 입학처장을 맡으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다양한 입장에서 한국의 입시와 교육 제도를 경험하고 관찰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답답한 마음에 책을 쓰게 됐다”며 “대학 교수 입장에서 느낀 아쉬움을 담았다”고 했다.
중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은 ‘배움의 즐거움’을 느낄 새가 없다. 정확한 개념을 익히지 못한 채 쓸데없이 어렵고 많은 문제를 풀기 바쁘다. 의미 없는 경쟁 속에 많은 아이가 학업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잃고, 삶의 만족도가 낮은 학생으로 전락한다.
영재학교 학생이라고 다를 바 없다. 이 교수는 “영재고에 아이를 보낸 한 학부모에게 언제부터 사교육을 시켰냐고 물었더니 6살이란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영재여서 영재학교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사교육을 통해 시험 문제를 잘 풀게 된 아이가 영재고나 과학고에 들어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동료 교수들에게 물어봤어요. 만족도가 높은 출신 고등학교가 어디냐고요. 학부생의 경우 영재고, 과학고, 일반고 순이었지만, 대학원생은 일반고, 과학고, 영재고로 그 순서가 정반대였습니다.”
그는 “KAIST 대학원생들의 출신 대학은 일류, 이류 혹은 삼류로 다양하지만 대학원에서의 성적과 연구 능력은 차이가 없고, 오히려 많은 교수들이 일류 대학 졸업생보다 이류 혹은 삼류 대학에서 뒤늦게 정신 차리고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만 하고 어려운 문제만 풀었을 다른 학생들과 달리 나름 ‘제대로’ 교육받았고 ‘실컷 놀았을 것 같다’는 기대”로 그를 뽑았다고 한다. A박사는 열심히 공부해 ‘네이처’ 논문 1저자가 되었고, KAIST 박사 후에는 미국 칼텍에서 포스트닥(박사 후 연구원)을 한 후 애플 연구소에 들어갔다.
교수를 뽑을 때도 마찬가지란다. 그는 “저도 옛날 사람이라 아직 학벌주의가 남아있는지 이런 데서 학위를 따고 KAIST 교수로 오는구나 놀랄 때가 있다”며 “이제는 실력만 좋으면 교수로 뽑고, 적어도 KAIST에서는 학벌주의가 많이 깨졌다”고 했다.
그는 “첨단을 쫓지 말라”고도 했다. “저도 첨단을 했어요. 마이크로를 하고, 나중에 나노, 바이오도 했죠. 그런데 첨단이라고 뛰어들면 그 분야에는 이미 몇십 년 전부터 오랫동안 연구해온 사람이 있습니다. 특허도 다 갖고 있죠. 첨단을 쫓기만 하면 최고가 못 됩니다. 대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그게 나중에 첨단이 될 수 있어요.”
이 교수는 “자유롭고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인재가 필요한데도 우리 교육은 아직 50~60년 전에 머물러 있다”며 “이제는 정말 교육이란 무엇인지, 아이들을 어떤 사람으로 길러내고 싶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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