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막대한 혈세를 들여서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며 반시장적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방송법, 간호법, 노란봉투법 등 윤 대통령이 거부할 것으로 예상되는 법률안을 잇달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들 법률안은 정부가 수차례 반대 의사를 밝힌 것들입니다.
합의제 의사결정 기관인 국회의 입법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이 대화와 토론을 통해 ‘숙의(deliberation)’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아봅시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법률안 거부권을 정당화하는 사유들은 무엇인지 이해해봅시다.
‘직접민주주의’는 고대 아테네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그런데 아테네의 모든 시민들이 권력을 ‘직접’ 행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도 대표를 뽑았습니다. 다만 선거가 아니라 ‘추첨’으로 선출했습니다.
공공의 이익과 공공의 의사는 무슨 차이가 있냐구요. 먼저, 공공의 의사를 반영해야 하는 추첨을 통해 뽑힌 대표자는 자신을 뽑아준 사람들의 의사(뜻)에 반하는 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이를 가리켜 ‘기속위임(binding-mandate)’이라고 합니다. 권력을 위임받기는 했는데 자신이 대표하는 사람들의 의사를 거스를 수 없다는 의미에서 기속이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선거로 선출된 대표자는 자유위임(무기속위임)이라는 지위를 갖게 됩니다. 자신에게 투표한 사람들의 뜻과 다르더라도 공공의 이익과 국가이익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자유위임이라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300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해 국회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국회에 법을 만들 수 있는 권력인 입법권을 부여합니다. 개별 국회의원이 입법권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국회를 ‘합의제 의사결정 기관’이라고 부릅니다.
숙의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다수결(majority rule)이라는 규칙만 남게 됩니다. 다수당이 본회의를 열어 법률안을 바로 통과시키면 됩니다. 소수의 의견은 묵살되고, 더 좋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논의는 불가능합니다.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뽑은 대표(국회의원)에게 공공의 이익을 찾아달라고 자유위임이라는 권한을 부여한 일이 허사가 됩니다.
지난해 12월 양곡관리법은 법사위에 계류돼 있었습니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빨리 본회의에 상정해 통과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법사위에서 법률안이 60일간 계류됐을 때, 여야 합의가 없어도 해당 상임위원회(양곡관리법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할 경우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다’는 국회법 규정을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당시 농해수위는 총 19명의 의원으로 구성돼 있어서 11명 민주당 의원만으론 5분의 3에 미치지 못했죠. 민주당은 민주당을 탈당한 무소속 윤미향 의원까지 합해 요건을 충족했고, 법사위를 거치지 않고 법률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지난달 본회의를 통과시켰습니다.
결국 양곡관리법에는 ‘국회의원들의 숙의가 배제된, 다수결만으로 국회를 통과한 법’이란 꼬리표가 붙게 됐습니다.
2. 국회 입법과정에 대해 조사해보자.
3. 입법과정에서 숙의가 중요한 이유를 설명해보자.
이처럼 법은 우리 삶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이런 법을 만들거나 개정하기 위한 법률안은 국회의원과 정부가 제출할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 법을 만드는 일은 국회만 할 수 있습니다.이렇게 전 국민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입법권을 가진 국회는 어떻게 견제될까요. 4년마다 국회의원을 새로 뽑는 선거가 가장 중요한 견제 수단입니다. 국민들은 입법권을 제대로 행사할 적임자(국회의원)와 세력(정당)을 투표를 통해 선택합니다.
원래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총체적 거부권(package veto)’으로 법률안 전체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헌법은 이 거부권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부분적 거부권(partial veto)’으로 법률안 내용 중 자신(대통령)이 선호하지 않는 항목만 거부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대통령이 이런 권한을 가지면 원치 않는 내용은 삭제하고 원하는 내용만 통과시킬 수 있으므로 국회의 입법권이 무력화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 국가들은 이 거부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셋째는 대통령이 국회에서 넘어온 법률안을 공포하지 않고 무작정 보유할 수 있는 ‘보유 거부권(pocket veto)’입니다. 한국의 대통령은 국회에서 재의결된 법률안을 5일 이내에 공포해야 하므로, 보유 거부권이 없습니다.
이렇게 헌법이 침묵하고 있으니, 헌법학자들의 해석에 의존해야 합니다. 여섯 가지 사유가 주로 거론됩니다. ①헌법에 위반되는 법률안 ②집행 불가능한 법률안 ③국익에 반하는 법률안 ④정부에 부당한 압력을 가하는 법률안 ⑤예산상 뒷받침이 없거나 재정적으로 부담되는 법률안 ⑥대통령의 정책에 부합하지 않는 법률안 등이 그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에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정부의 농정 목표에 반하고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연간 1조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남는 쌀을 강제로 매입할 경우 오히려 쌀값이 떨어져 세금만 낭비할 것이라고도 주장했습니다. 위의 여섯 가지 사유 중 ③, ④, ⑤, ⑥ 등과 관련이 깊어 보입니다.
2.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의 종류를 정리해보자.
3. 대통령 거부권의 정당화 사유에 대해 토론해보자.
장경영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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