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가해를 대학입시에 반영하고, 기록은 졸업 후 4년간 남게 된다. 취업 때도 반영되도록 하는 방안까지 검토됐으나 이번에는 빠졌다. 사회진출(취업)에 중대한 불이익을 주자는 주장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학교폭력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정순신 변호사 아들 폭력 논란’이 정 변호사 공직 기용 과정에 불거지면서 다시 화제가 됐다. 결국 ‘처벌 강화’ 대책이 나왔지만 반대론도 만만찮다. 빗나간 학생을 바로잡는 것이 교육의 본질인데, 강한 처벌로 ‘주홍글씨’를 찍어 평생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학교 측 예방·처벌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를 감안하면 엄격한 처벌 외에 대안이 없다는 차원의 불가피론은 설득력을 얻는다. 입시 반영을 넘어 사회 진출(취업)에도 불이익을 주자는 방안은 이성적인가.
모두가 걱정만 하고 개탄만 해서는 학폭이 없어지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학생 폭력은 완력에 흉기까지 동원된다. 언어폭력도 있고 금품 탈취도 있다. 스토킹과 사이버폭력, 강요도 있다. 집단 따돌림(왕따) 문화도 이어지는 데다 심지어 성폭력까지 있다.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교생 중 피해 사실을 알린 정도는 평균 91%에 그친다. 10명 가운데 1명은 입도 못 떼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교육의 본질’ ‘한때의 실수’ 운운하며 물에 물 탄 유화책을 거론하는 사이 점점 심각해지는 게 학폭이다. 직접 피해자 실상은 도외시한 채 고상한 해법만 내놓는 가운데 돌이킬 수 없는 궁지로 몰리는 학생이 계속 나온다. 이 악순환을 누가 책임지고 있나.
갈수록 교묘해지고 거칠어지는 학폭을 근절할 구체적 수단이 없다. 그렇다고 교사들이 제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학생 인권’ 타령을 하는 사이 교권도 사실상 상실돼버렸다. 그렇다고 미국처럼 경찰을 교문에 배치하고, 폭력이 있으면 무장 경찰이 학교로 즉각 진입하게 할 것인가. 쉽지 않다. 신고를 해도 형사 처벌이 쉽지 않지만, 법정으로 가봐야 피해 학생에 2차 가해를 가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길게 늘어지는 수사와 재판 자체가 자칫 추가 고문이 된다. 근절을 위해선 사회 진출에 불이익을 줄 정도로 실질적 처벌을 강화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사회의 모든 갈등과 싸움, 가해에 대한 좋은 해법과 가르침은 화해·참회·치유·용서다. 이런 본연의 가치를 복원하는 게 중요하다. 해법에 시일이 걸리고, 치유가 더뎌 보여도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교육의 본래 기능이 가르침과 훈육 아닌가. 학교와 교실, 교사의 제자리 찾기가 선행돼야 한다. 중학교 때 한 번 실수를 대입에 반영하는 것도 과잉 반응인데, 취업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심하다. “학생이 성인을 상대로 한 폭행·강도·사기 등 형사 범죄에는 불이익이 없는데, 학교 폭력에 대해서만 중징계를 하자는 게 타당한가”라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주장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과도한 처벌은 피해 학생에게도 추가적 해가 될 수 있다. 취업까지 불리해지면 가해 학생 측은 쉽게 폭력 행사 사실을 시인하지 않은 채 법정 싸움만 길어질 수 있다.
실효성도 의문이다. 모든 범죄가 그렇듯 중징계한다고, 처벌을 강화한다고 학폭이 줄어들지 않는다. 더구나 출신 학교, 남녀 성별까지 다 가리는 블라인드 채용이 정부 주도로 확대되는 판에 학폭 사실을 취업 때 어떻게 가려낼 것인가. 취업 반영은 연좌제를 연상시킨다. 부모 형제 범죄를 자식에게 연결해 불이익을 주는 연좌제가 왜 없어졌는지 볼 필요가 있다. 현실성이 없다. 차라리 교권을 확대해 교사에게 더 많은 책임을 부과하는 게 옳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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