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인 마르크 샤갈과 막스 에른스트, 철학자 발터 벤야민와 한나 아렌트···. 역사적으로 굵직한 업적을 남긴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모두 독일 나치 정권의 표적이 된 유대인들이다. 뛰어난 업적을 남겼음에도 박해를 받으며 도망 다녀야 했다. 그런데 그 뒤엔 숨은 조력자가 있었다. 세계적 인도주의 기구인 국제구조위원회(IRC)다. IRC는 이들을 포함한 4000명 이상의 난민들의 망명을 도왔다.
IRC의 시초가 된 긴급구조위원회(ERC)의 주요 멤버들을 중심으로 한 난민들의 구출 작전을 그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대서양을 건너는 사람들'(트랜스아틀란틱)이 지난 7일 공개됐다. 드라마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1940년 마르세유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치 정권의 눈을 피해 반드시 난민들을 망명시키려는 각종 작전이 펼쳐진다. 난민들 가운데 샤갈, 에른스트, 벤야민 등 당대 유명 예술가와 철학자도 작품에 등장해 더욱 생동감을 더한다.
이 드라마는 줄리 오링거의 실화 바탕 소설인 '비행 포트폴리오'를 원작으로 한다. ERC의 창립 멤버이자 미국 기자인 배리언 프라이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총 7부작으로 길리언 제이콥스, 루카스 앵글란더 등이 출연한다.
이야기는 미국 자산가의 딸로 많은 돈을 들여 난민들을 돕는 메리 제인 골드(길리언 제이콥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난민을 돕는 일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난민 여성 우르줄라를 위해 그 자리에서 자신의 고급스러운 옷과 다 낡고 더럽혀진 옷을 바꿔입을 정도다. 게다가 돈을 쥐어주고 밀항까지 적극 돕는다.
그는 이 과정에서 우르줄라의 동생인 알베르토(루카스 앵글란더)를 만나게 된다. 알베르토는 누나와 망명을 하려다 혼자 남아 ERC 멤버들과 다른 난민들의 망명을 돕는다.
주인공들이 난민들을 지원하고 망명시키는 과정은 한편의 첩보 스릴러처럼 그려진다. 도망가는 곳마다, 이들의 아지트인 한 호텔에도 나치 군이 나타나고 곧 쑥대밭이 되고 만다. 혼신의 힘을 다해 도망쳐야 하는 난민들과 이들을 돕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역사적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드라마는 난민들 가운데 역사에 길이남은 예술가와 철학자 등이 있다는 점을 전면에 부각시켜 비극을 극대화한다. 특히 작품 초반에 등장하는 벤야민의 고통이 크게 다가온다.
이들이 함께 모여 파티를 여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박해를 받는 유명 예술가들이 한데 모여 각자 독특한 복장을 하고 왁자지껄 파티를 여는 모습은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답다. 파티엔 샤갈, 에른스트뿐 아니라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사들이고 후원했던 페기 구겐하임도 참석한다. 자유분방한 연애를 했던 에른스트와 구겐하임 두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지는 장면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만큼 더욱 흥미롭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긴장감이 떨어진다. 특정 패턴이 반복되고 사랑 이야기가 장면 곳곳에서 부각되는 점도 아쉬움을 남긴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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