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火魔와 사투…천년고찰 고산사 지켜냈죠"

입력 2023-04-14 18:41   수정 2023-04-15 00:47


“신라 말기에 지어진 고산사를 제2의 낙산사로 만들 순 없다는 각오로 뛰었습니다.”

이달 들어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잇달아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현장의 소방관과 산림청 직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쁜 시간을 보내며 불길과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27년차 소방관인 이익성 충남 홍성 광천119안전센터장은 지난 2일 발생해 사흘간 이어진 홍성 산불에서 ‘고산사 작전’을 지휘했다. 이 센터장은 “2일 홍성군 서부면에서 산불이 나자마자 문화재청에서 고찰 고산사를 꼭 지켜야 한다는 연락이 왔다”고 했다.

건조한 날씨에 낙엽이 쌓인 야산은 불길이 번지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이 센터장은 “산불 이틀째인 3일 밤 9시반부터 4일 새벽까지 대웅전의 북동, 북서, 서남부에서 세 차례에 걸쳐 차례로 불길이 접근해왔다”고 했다. 소방청·산림청·문화재청 직원들은 밤새 어둠 속에서 흙과 땀, 물로 뒤범벅된 채 진화 현장을 뛰어다니며 악전고투를 벌였다. 산불은 절을 제외한 3면의 숲이 모두 불타고 날이 밝은 뒤에야 잡혔다. 그는 “불길이 보물339호 대웅전의 70m 코앞까지 달려들어 아찔했다”며 “2005년 강릉 양양 낙산사 대화재를 반복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지켰다”고 했다.

지난 2일 서울 인왕산에서 난 산불도 서울시민들에게 산불의 위험성을 톡톡히 알렸다. 종로소방서 대원들은 “인왕산은 평소 산불 신고가 잦은데, 이번엔 단순 화재나 오인 신고가 아니라 진짜 큰 산불이었다”며 긴박했던 순간을 전했다.


현장 진화 25년차 최진오 종로소방서 진압1팀 대장은 “현장에 도착해보니 체감 초속 10m가 넘는 바람이 불고, 불길이 인왕산 능선을 넘어 서대문 쪽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었다”고 했다.

인왕산은 해발 338m로 높진 않지만 가파르다. 무거운 물호스를 들고 급히 바윗길을 타고 오르다 낙석에 맞을 뻔하거나 부상을 당한 대원이 여럿이라고 그는 전했다. 종로소방서 두 팀은 각각 700m, 900m까지 소방호스를 거듭 연결하고 나서야 간신히 물을 뿌릴 수 있었다. 돌산 위로 무거운 물호스를 끌고 오르는 것은 온전히 사람의 몫이다. 최 대장은 “끊임없이 ‘수관(물호스) 좀 더 가져오라’고 소리쳐야 했다”고 돌이켰다.

인왕산 산불은 축구장 21개에 해당하는 15.2㏊를 태우고야 꺼졌다. 소방관들은 “비가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다”면서도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현장을 지킬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홍성=김대훈 기자/최해련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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