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학생들이 제게 말을 걸 땐 벽을 보면서 말하곤 해서 제게 인사한 줄 몰랐네요."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15일(현지시간)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다 하버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진학해 화제가 된 레한 스태턴(27)이 대학 내 노동자를 위한 비영리 단체(NPO)를 설립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지난해 1월 학교에서 청소부에게 인사를 건네자 돌아온 답에 대학 내 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
스태턴은 "미화원으로 일하는 게 어떠했는지가 기억이 났다"며 "어떻게 하면 캠퍼스에서 그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스태턴은 방학 동안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며 모은 돈을 털어 아마존(전자상거래 업체) 선불카드 100장을 샀다. 그는 감사의 뜻을 담은 자필 메모와 함께 카드를 노동자들에게 전달했다. 노동자들은 입을 모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당한다"고 고충을 털어놨다고 한다.
스태턴은 친구이자 과거 자신이 일했던 쓰레기 수거업체의 부관리자 브렌트 베이츠와 NPO를 설립하기로 결심했다. 이들은 베이츠의 아버지로부터 5만 달러(약 6505만원)를 기부받아 '레시프라서티 이펙트(Reciprocity Effect)'란 단체를 만들었다.
지난해 11월에는 첫 프로젝트인 '땡큐 카드 캠페인'을 진행했다. 하버드 학생 250명으로부터 감사 메시지를 받아 아마존 카드와 함께 노동자들에게 전하는 프로젝트였다. 이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을 진행해 총 7만 달러(약 9200만원) 상당의 기부금을 모았다. 이는 어려운 형편에 처한 노동자들에게 보조금 형태로 지원될 예정으로 전해진다.
스태턴은 어린 시절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8세 되던 해 부모가 이혼했고 어머니는 고국인 스리랑카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스태턴과 형을 양육하기 위해 하루에 세 곳에서 일했다. 그래도 집에는 먹을 게 없었고 전기가 끊길 때도 있었다.
학교 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의 초등학교 선생님은 "정신 장애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복싱 선수를 꿈꿨지만, 어깨를 다치며 꿈을 접어야 했다. 건강 보험이 없어 의사에게 갈 수 없자 그는 생계를 위해 쓰레기 수거업체에 취업했다.
그러던 그의 총명함을 알아본 동료들이 "공부를 해야 한다"며 용기를 북돋웠고, 베이츠의 아버지가 보위 주립대에 진학하도록 도왔다. 주변의 도움으로 학업에 집중한 스태턴은 최고 학점을 받아 메릴랜드 주립대에 편입할 수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다시 쓰레기 수거 일을 해야 했지만,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스태턴은 졸업 후 한 컨설팅 업체에서 일하며 로스쿨 시험을 봤고, 2020년 하버드대·컬럼비아대·펜실베이니아대 세 곳에 합격하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지난 5월 졸업 후 뉴욕의 한 로펌에 입사할 예정인 스태턴은 NPO 활동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날 위해 나서지 않았다면 오늘날 나는 이곳에 없었다"며 "내가 받은 선행의 대가를 타인에게 베풀 것"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스태턴을 응원하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이들은 "영화 이야기 같다", "실존하는 영웅", "존경스럽다", "인간 승리다", "아직 살만한 세상이다" 등 반응을 내놨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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