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미술시장은 침체를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다. 2021년부터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한 미술품 가격과 거래량은 지난해 9월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를 기점으로 정점에 도달했다. 여기에 실물경기 둔화와 자산시장 위축마저 겹쳤으니 미술시장의 호황은 장담할 수 없었다. 유일한 관심은 ‘소프트 랜딩(연착륙)’이냐 ‘하드 랜딩(경착륙)’이냐 정도였다.
17일 미술계에 따르면 ‘2023년 화랑미술제’ 성적표는 연착륙에 가깝다는 신호를 강하게 줬다. 지난 12일부터 사흘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된 이 행사는 지난해 KIAF-프리즈 후 서울에서 처음으로 열린 대형 아트페어로, 개막 전부터 올해 미술시장의 흥행 가늠자로 주목받았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41년 역사상 최대 관람객(5만8000여 명)을 기록했다. 지난해처럼 아침부터 ‘줄서기 알바’까지 동원해 가며 ‘오픈런’을 노리는 진풍경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행사 기간에 꾸준히 컬렉터와 관람객이 몰렸다.
판매 실적도 ‘역대급 호황’이었던 지난해보다 크게 뒤떨어지지 않았다. 인기가 높은 작가들의 작품은 첫날 개막 직후 완판을 기록했다. 리안갤러리가 내놓은 이건용의 신작 회화와 조현화랑이 출품한 이배의 작품들이 단적인 예다. 선화랑 역시 이영지 작가의 작품을 개장과 동시에 모두 팔았다. 국제갤러리가 독일 출신 사진작가 칸디다 회퍼의 대형 사진(8500만원대)과 바이런 킴의 신작 회화(9500만원대)를 파는 등 비교적 고가인 작품도 판매 열기가 뜨거웠다.
참여 화랑들은 “지난해보다 미술시장 저변이 더욱 넓어졌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체감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지환 갤러리그림손 대표는 “지난해에는 미술에 대한 애정 없이 시세차익을 얻기 위해 그림을 마구 사들이는 사람이 많았는데, 올해는 관람객의 미술에 대한 애정과 이해도가 크게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승훈 본화랑 대표는 “미술시장이 경착륙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기우에 불과했고 괜찮은 작가들의 작품은 여전히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팝아트와 조각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고루 판매된 것도 긍정적인 요소로 꼽혔다. 환금성이 높은 단색화에 판매가 집중됐던 작년과는 대조적이다. 이번 행사에서 처음으로 미술품을 구입한다는 고객도 많았다. 화랑협회 관계자는 “미술시장에 여전히 새로운 컬렉터가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며 “지난해에는 혼잡한 인상이었다면 올해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다량의 거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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