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의 1차 화약고는 간호법이다. 현행 의료법에서 간호에 관한 사항, 간호인력 양성 및 근무환경 개선 등 간호사 관련 내용을 별도 법률로 떼어낸 법안이다. 형식만 달라질 뿐 내용상으론 기존 의료법과 달라지는 게 거의 없다.
최대 쟁점은 간호사의 ‘단독 개원’이다. 간호법안 제1조에 포함된 ‘지역사회’ 문구를 둘러싼 해석이 엇갈려서다. 1조에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이라고 명시돼 있다. 의사들은 간호사들이 홀몸노인 등을 위한 지역돌봄센터 같은 의료기관을 세울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의료기관 개설자를 의사로 제한한 의료법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간호협회는 간호사 단독 개원은 ‘거짓 뉴스’라고 주장한다. 간호법안에는 그런 내용이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규정한 의료법의 간호사 진료 관련 업무 범위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간호사가 노인 가정을 방문했을 때 혈압이나 혈당 체크도 못 하게 하는 비현실적인 조항이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선 간호법 제정이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2026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노인 간호·돌봄 서비스 수요가 폭발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합리적인 제도 개선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간호법은 노인 간호·돌봄 서비스가 마치 간호사의 고유 업무처럼 인식되게 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의료인 간 영역 다툼의 새로운 불씨가 될 게 뻔하다. 게다가 제2, 제3의 간호사법이 쏟아질 것이다. 간호조무사, 임상병리사등도 권익 보호를 위해 독자 법안을 요구할 공산이 크다. 의료시스템은 점점 누더기가 될 것이고, 그 피해는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2차 화약고인 비대면 진료 합법화 논의도 상식을 벗어났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일상으로 자리 잡은 원격진료와 처방약 원격배송을 후퇴시킨 꼴이 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비대면 진료 범위를 ‘재진’으로 국한하기로 의사협회와 합의해서다. 초진이 불허되면 닥터나우 등 비대면 진료 플랫폼 기업들은 당장 문을 닫게 생겼다. 플랫폼 기업의 비대면 진료 서비스 이용자 90% 이상이 초진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부는 약사들의 반대로 처방약 원격배송은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하는 것도 문제다. 간호사법과 맞물려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이 발목 잡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러는 사이 진짜 원격진료가 필요한 환자가 서비스를 못 받게 될 수도 있다. 다음달쯤 코로나19 상황이 최고 단계인 ‘심각’에서 하향 조정되면 비대면 진료 한시 허용이 끝나기 때문이다.
간호법이든, 비대면 진료든 의료계 분란의 출발점은 의사 중심 의료시스템이다. 1944년 조선의료령이 만들어진 이후 80년 가까이 바뀐 적이 없다. 그사이 의사와 간호사는 수직적 관계로 굳어졌다. 의사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어떤 혁신 서비스도 설 자리를 찾지 못했다. 한국이 의료 수준은 세계 최고이면서도 헬스케어 서비스 분야에선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하는 이유다. 낡은 의료제도를 바꾸지 않고선 의료산업의 미래는 없다. 끝없는 직능 갈등만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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