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경복궁은 세계의 다른 궁궐에 비해 웅장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을까? 스페인 남부의 알람브라 궁전이나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 등 세계의 유명한 궁궐들은 거대한 규모와 화려한 장식을 자랑한다. 외국의 사례에 비해 한국의 궁궐들은 작고 소박하게 느껴진다.
그동안 이 질문에 대해 여러 해석이 제기돼 왔다. 사대주의 때문이라는 정치적인 관점에서부터 물자가 부족해서라는 경제적 시각, 자연과의 조화를 위해서라는 미학적 분석까지 다양하다. <산을 품은 왕들의 도시 1·2>는 조선의 수도 서울을 둘러싼 ‘산’들을 중심으로 이 궁금증을 해소한다.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원으로 있는 이기봉 박사는 인터뷰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이야기를 끌어 나간다. 때는 14세기 말, 고려왕조가 막을 내리고 새 나라 조선이 출범하던 시기였다. 수도를 개경에서 서울로 옮기는 일은 개국 최대의 프로젝트였다. 조선을 세운 태조는 이를 개국공신 정도전에게 맡겼다. 저자는 역사 방송 아나운서들이 던진 질문을 환생한 정도전이 답하는 형식으로 천도 과정을 설명한다.
문제는 ‘도읍을 어디에 정하느냐’였다. 개경에 연고를 둔 기존 세력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한 구실이 필요했다. 여기서 동원된 게 풍수지리 사상이다. 북쪽의 북악산을 기준으로 좌청룡 낙산, 우백호 인왕산으로 둘러싸인 서울을 ‘명당’으로 포장했다. 환생한 정도전은 “궁극적인 목표는 도읍을 옮기는 일이었고, 풍수지리 사상은 수단이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문명에서 ‘임금의 권위가 살아 있는 풍경’을 연출하는 일은 중요한 과제였다. 밖에서 보기에 임금이 머무는 공간은 하늘과 맞닿아 있어야 했다. 하늘에서 궁궐로 이어지는 풍경을 통해 지배자의 권위를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알람브라 궁전은 언덕 위 높은 지대에 세워졌고, 자금성은 드넓은 평지에 홀로 우뚝 솟은 형태로 축조됐다.
서울도 인간의 도시가 아닌 ‘하늘의 도시’로 설계됐다. 여기까진 다른 문명들과 같다. 차이는 '산 밑에' 궁궐이 있다는 점이다. 하늘과 임금을 잇는 징검다리로써 산을 활용했다. 하늘에서 산으로, 산에서 궁궐로 이어지는 모습에서 임금의 권위를 연출했다. 저자는 이를 "다른 문명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한국만의 특수성"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시각적 효과는 서울의 과학적인 설계로 극대화된다. 먼저 도성을 둘러싼 산줄기는 도성 밖에서 안쪽을 보지 못하게 하는 차단막이 된다. 차단막은 임금에 대한 신비감을 증폭시킨다. 숭례문에 들어서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북악산과 보현봉이 시선을 압도한다. 세종대로를 따라 걸을수록 북악산 아래 경복궁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광화문에 도달하면 시야에서 산은 사라지고 궁궐의 모습이 이를 대체한다. 단계적인 풍경 변화를 통해 산세의 위엄은 임금의 권위로 전환된다.
즉, 경복궁의 웅장함은 건물 그 자체가 아니라 산을 통해 표현된 셈이다. 다른 문명처럼 거대하고 화려한 궁궐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다. 아무리 높고 화려한 궁궐을 지어도 해발 714m 높이의 보현봉 앞에선 초라해질 뿐이었다. 오히려 소박한 궁궐을 통해 장엄한 산세를 돋보이게 할 수 있었다.
책을 통해서는 서울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경복궁은 지금 위치가 아닌 연세대가 있는 안산 아랫목에 들어설 뻔했다. 다른 문명에 비해 경복궁 내부 연못이 유난히 네모난 데에도 이유가 있다. 서울과 경복궁을 둘러싼 다양한 사연을 정도전의 입을 통해 풀어낸다.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면 2권도 찾아볼 것을 권한다. 책은 두 권으로 구성됐다. 1권의 주인공이 정도전이었다면 2권에는 보다 많은 인물들의 가상 인터뷰가 실렸다. 창덕궁과 창경궁에 대해선 태종을, 경희궁의 이야기는 광해군을 불러내 대담하는 식이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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