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와 용도를 허무는 기술 혁신 [이지스의 공간생각]

입력 2023-04-19 10:34  

이 기사는 04월 19일 10:3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부동산이 대체투자의 주요 대상으로 자리매김한 이래 오피스는 정형화되고 안정적인 투자 자산으로 오랫동안 주목받았다. 특히 뉴욕, 런던, 파리 등 전 세계 주요 도시의 핵심 업무 지역에 위치한 오피스는 그 입지만으로 안정성과 수익성이 보장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상황을 바꿔 놓았다. 재택근무 확대 등 기업문화가 바뀌면서 오피스는 예전보다 투자하기 까다로워졌다. 가파른 금리 인상의 영향도 있지만 업무 방식, 라이프 스타일, 산업 구조 등이 인공지능, 자율주행, 메타버스 등 기술과 함께 빠르게 변하며 기존 공식을 낡게 만들고 있다.

부동산 투자가 어려운 것은 정치, 경제, 문화가 복합적으로 투영된 플랫폼에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은 사회경제적 발전을 위한 인프라적 성격을 띄고 있으며 사회의 필요에 맞춰 후행적으로 공급되며 발전해 왔다. 기존에는 변화의 속도를 부동산 시장이 충분히 예측하고 따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기술 발달로 인한 구조의 급격한 변화가 일상인 오늘날에는 더욱 장기적인 예측과 복합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급기야 부동산 투자는 사회의 변화를 뒤따라가던 모습에서 벗어나 변화의 선봉에 서야 할 수 있다.

부동산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신기술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부동산 투자에 있어 ‘입지’와 ‘용도’가 절대적인 상수라는 상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로 진입할 수 있다. 10년에서 20년이 걸릴 미래일 수 있지만, 기술이 만드는 변화들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은 일상 업무를 대체할 것이다. 가정용 로봇까지 상용화되면 가사노동과 육아에서도 한시름 덜 수 있다. 이런 변화는 여가 시간의 증가를 의미한다. 자녀도 보편화된 원격수업으로 원거리에 있는 좋은 교육환경을 누릴 수 있다. 통학 시 학교가 멀어도 자율주행 차량을 통해 부모의 시간적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사람이 핸들을 놓는 순간 자율주행 차량은 침실, 사무실, 휴게 공간 등으로 활용될 수 있다. 장거리 출퇴근에 따른 기회비용 감소는 주거비용이 낮고 자연환경을 갖춘 도시 외곽의 주거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더불어 UAM 등 항공 모빌리티가 보편화되고 하이퍼튜브를 통해 장거리 이동시간이 단축되면 도심으로 출퇴근할 수 있는 주거지역의 범위는 보다 확대될 것이다. 각 도시 간 이동도 활발해질 것이다. 서울 등 수도권의 도심 역세권과 편리한 교통망, 우수한 교육 및 의료 인프라 등으로 주목받던 주거 입지의 프리미엄도 차츰 감소될 것이다. 복잡한 도심보다 훌륭한 자연환경, 쾌적한 시설, 보안, 지역 커뮤니티, 편의 및 여가 시설을 두루 갖춘 주거 상품이 더욱 각광받게 될 수 있다.

통신기술, VR, 메타버스의 발달로 업무 형태가 변화됨에 따라 도심 내 오피스 지형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이미 재택근무의 활성화로 인해 도심 오피스에 대한 활용도가 떨어지고 있다. 통신 및 데이터 기술의 발달로 원격근무나 재택근무의 불편함이 사라진다면 이 같은 근무 형태는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예를 들어, 메타버스 환경 내 사무공간에서 직원들이 아바타를 통해 함께 근무한다면 재택근무로 인한 직원 간 커뮤니케이션의 불편함과 거리감이 사라질 수 있다. 회사에 직접 출근할 필요성이 작아지기 때문에 도심 업무시설의 축소 및 거점 오피스의 활성화를 통한 업무지역의 분산도 이뤄질 수 있다.

주요 거점마다 공유오피스도 활성화될 것이다. 주거시설에 회사와 동일한 업무 환경을 갖추기 제약이 있을 것이다. 이를 보완하고자 사무기기 및 사무용품, VR 회의실, 휴게시설 등 시설을 갖춘 공유오피스가 집 주변에 생길 것이다. 이미 일부 대기업과 테크기업은 업무와 여가를 결합한 워케이션 센터를 활용하고 있다.

업무, 여가, 주거의 경계가 허물어질 것이다. 혁신 기술은 부동산의 입지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사용 용도의 틀을 해체한다.

가령, 자율주행 공유차량과 가정용 로봇, 자율 배송을 이용한 외부 창고 사용 확대 등은 집의 주차장, 부엌, 창고 등 공간을 업무 및 여가 공간으로 꾸밀 수 있다. 어쩌면 스마트팜을 통해 필요한 채소와 과일을 집에서 자급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심 오피스의 경우, 거점 오피스와 재택 근무로 업무 공간이 분산됨에 따라 사무실 용도에서 도심형 엔터테인먼트 시설, 호텔, 고급 레스토랑, 수직형 스마트팜 등 시설로 변모할 수 있다.

자율주행 공유차량 확대로 불필요해진 오피스의 지하 주차장은 물류 집배송 공간으로 쓰일 수 있다. 드론택시, 드론버스 등 항공 모빌리티가 활성화되면 도심 내 주요 도로와 지하철 역사 등은 물류, 공원, 여가활동을 위한 시설로 활용할 수 있다. 주중에 도심으로 출근하고 주말에 집에서 쉬는 생활 패턴이 주중에 집 또는 근처 거점 오피스에서 일하고 주말에 여가를 위해 도심으로 이동하는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기술의 발달과 생활 패턴 변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기존의 지정된 토지의 용도, 건폐율, 용적율 등 규제 사항은 더욱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이미 상용화되고 있는 모듈형 건축, 3D 프린팅 기술 등 건축 기술의 발전이 뒷받침해 준다면, 건물 자체를 필요에 따라 다른 위치로 이동시키거나 ‘트랜스포머’와 같이 내부 구조와 외형을 변경해 사용할 수 있는 건물도 등장할 수 있다.

인류 역사의 발전에 있어 부동산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늘 함께 변화하면서 발전해 왔다.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 자율 주행, 메타버스 등의 기술 혁신은 인류가 거리와 공간의 장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있다. 입지, 용도, 건물 스펙 등은 부동산 투자 분석 시 변화가 거의 없는 고정값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미래에는 변수로 고려해야 할 수 있다. 아직 먼 미래의 일로 여겨질 수 있으나 세계 각국의 미래 기술 양상과 글로벌 트렌드 변화를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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