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의 묘' 영화 속 사탕가게, 114년 만에 문 닫은 이유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입력 2023-04-20 07:19   수정 2023-04-20 09:11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지난 1월20일 사쿠마제과라는 도쿄의 제과회사가 문을 닫았다. 일본인들이 아쉬움의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는 114년의 역사가 끊기게 됐다는 사실 뿐만이 아니다. '사쿠마식 드롭스'라는 이 회사의 대표 상품 때문이다.



지브리스튜디오가 1988년 발표한 애니메이션 '반딧불이의 묘(火垂るの墓)'에 등장한 바로 그 상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의 공습으로 엄마를 잃고 배고픔에 허덕이던 14살 오빠 세이타와 4살 여동생 세츠코가 차례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반딧불이의 묘에서 사쿠마식 드롭스는 중요한 소품으로 사용된다. ‘1945년 9월21일 나는 죽었다’로 시작하는 첫 장면에서는 숨이 끊어진 세이타가 먼저 죽은 여동생의 화장한 뼈를 간직한 도구였다. 부스러기만 남은 사탕 통에 물을 섞어 마시고 "정말 맛있다"며 기뻐하는 장면은 세계인을 울렸다.



사쿠마제과는 "원자재 가격 급등과 엔저(低)로 인한 경영 악화"를 폐업의 이유로 들었다. 원자재값 상승의 부담을 엔저가 증폭시키면서 지난 2월까지 일본의 무역적자는 19개월 연속 적자를 이어갔다. 지난 1월 무역적자는 3조4996억엔으로 사상 최대였다.



일본의 서민들도 고통스럽다. 지난해 실질임금 상승률은 -0.9%였다. 월급이 찔끔 올랐어도 물가가 더 뛴 탓에 실제 소득은 오히려 줄었다는 뜻이다. 일본의 실질임금은 작년 12월까지 7개월 연속 마이너스였다.



그런데도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엔저는 일본 경제 전체로 봐서는 플러스"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엔저는 일본에 축복인가, 저주인가'는 2022회계연도(2022년 4월~2023년 3월) 일본 경제의 최대 논쟁거리였다.

결론부터 내리자면 엔저는 일본 경제에 축복이긴 하지만 예전 만큼 큰 축복은 아니라는 점, 또 소수의 수출 대기업에는 축복이지만 중소기업과 대다수 일본인들에게는 더 이상 축복이 아니라는 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엔저가 일본의 경제 주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먼저 기업부터 살펴보자. 일본의 주력산업은 수출 제조업이다. 그런 만큼 엔화 가치가 떨어질 수록 가격 경쟁력은 높아지고, 이익이 커지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노무라증권에 따르면 엔화 가치가 1엔 떨어지면 자동차와 화학 등 주요기업의 경상이익은 0.3% 늘어난다. 주요 19개 업종 가운데 엔저로 수익이 줄어드는 것은 전력과 같은 인프라 기업과 소매업 뿐이다. 원재료의 수입 의존도가 높은 분야라는 공통점이 있다. 2021년 일본 상장사 영업이익은 71조엔이었다. 엔화가 1엔 떨어지면 이익이 2130억엔 늘어난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해 10월21일 엔화는 151엔으로 32년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2021년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평균 110.80엔이었는데 2022년은 132.43엔으로 1년새 21.63엔(19.5%) 떨어졌다. 노무라증권의 추산 대로라면 지난해 일본 주요기업의 영업이익은 4조3000억엔 늘어난다. 과거에 비해서는 부진한 편이다.



다이와증권에 따르면 2002년 엔화 가치가 1엔 떨어지면 200대 기업의 영업이익은 0.7% 늘어났다. 2022년 1엔 하락할 때 영업이익의 증가율은 0.43%로 20년새 거의 반토막 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엔화가 강세를 나타내자 일본의 수출 대기업들이 생산시설을 해외로 대거 이전한 영향이다.

환율의 영향을 크게 받는 자동차와 전자 기업 15곳의 영업이익을 살펴보면 이러한 사실이 잘 드러난다. 2008년 엔화 가치가 1엔 떨어질 때 15개 기업의 영업이익은 1000억엔 늘었다. 2021년에는 이익이 늘어나는 폭이 880억엔으로 줄었다.



혼다는 엔화 가치가 1엔 떨어질 때마다 늘어나는 이익이 2008년 200억엔에서 2021년 120억엔으로 감소했다. 마쓰다는 '플러스 27억엔'에서 '마이너스 3억엔'으로 적자 전환했다. 두 기업 모두 해외 생산을 적극적으로 늘린 곳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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