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서울대병원이 만든 '가정집 거실' 가보니...AI로 자폐 진단

입력 2023-04-20 16:34   수정 2023-04-20 18:17


지금 진료를 신청하면 늦으면 5년 뒤에야 진찰을 받아 볼 수 있는 장애가 있다. 한국에서만 3만2000여명이 겪고 있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이야기다. 진료난을 해결하기 위해 SK텔레콤이 서울대병원과 손잡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에 활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진료실을 내놨다. 내년까지 1200명을 관찰 진료가 목표다. 발달장애를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길이 통신사와 학계의 협업으로 열리게 됐다.

AI로 음성, 표정, 고개 돌리는 각도까지 동시 관찰
20일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 자리 잡은 한 진료실, 가정집 거실처럼 꾸며진 이 방에서 한 여아가 어머니와 함께 대화를 나눈다. 건너편 방에선 여아의 음성, 표정뿐 아니라 반응속도, 고개를 돌리는 각도뿐 아니라 여아의 뇌파 흐름까지 실시간으로 기록된다. 수십가지 정보가 동시에 관찰되고 있지만 여아는 진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다. SK텔레콤과 서울대병원이 함께 최근 공개한 ‘AI 리빙랩’의 풍경이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이날 양사는 “AI 리빙랩으로 내년까지 아동 1200명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 여부를 검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AI 리빙랩에선 SK텔레콤이 아이의 상호작용 과정을 AI로 관찰한다. 이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서울대병원은 장애 여부를 가릴 때 쓸 수 있는 지표를 발굴한다. 기존엔 시선, 표정, 행동 등을 따로 촬영한 뒤에 이 결과들을 통합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AI 리빙랩에선 AI가 동일한 환경에서 동시에 측정한 여러 데이터들을 종합한다. 의료진이 진료에 쓸 수 있는 데이터의 품질 수준이 높아졌단 얘기다.

AI 리빙랩의 등장으로 많은 부모들을 애타게 했던 소아정신과의 진료난도 조금이나마 해소될 전망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명쾌하게 진단이 되는 장애가 아니다. 임상전문가가 최소 6개월 이상 관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출생 후 만 18개월이 지나면 진단이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만 4~5세가 돼서야 진단이 이뤄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AI 리빙랩 구축을 주도한 김붕년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교수)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이 가능한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국내에 20명이 안 돼 2027년까지 진료가 차 있는 전문의도 있는 실정”이라며 “이번 AI 리빙랩 개소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조기에 선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AI 덕분에 자폐 진단 지표 발굴하는 길 열려”
학계에선 AI 리빙랩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진단, 치료 모두에서 일대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관찰 데이터의 품질이 개선되면서 이 장애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여러 지표들을 동시에 평가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돼서다. 김 이사장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유전적 요인으로도 충분한 설명이 안 돼 진단이 쉽지 않았다”며 “AI 리빙랩으로 200명가량 진단 데이터가 쌓이면 이 장애의 진단, 치료 등과 관련된 주요 측정 지표가 무엇인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I 리빙랩의 성과가 확인되면 AI 기술을 다른 발달장애에 활용하는 것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진단할 때 평가하는 지표인 인지능력, 사회성, 언어능력, 행동 등을 다른 발달장애 진단에서도 적용할 수 있어서다. 김 이사장은 “AI 리빙랩에 쓰인 기술을 지적장애, 인지장애 등에도 활용할 수 있게 되면 여러 발달장애의 진단에 적용할 수 있는 도구들도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엄종환 SK텔레콤 ESG얼라이언스 담당은 “SK텔레콤의 AI 기술이 사회적으로 선용될 수 있게 돼 기쁘다”며 “향후에도 AI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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