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벗어나 훌쩍 떠나는 여행. 언제나 처음처럼 떨리는 단어다. 하지만 이 즐거움을 누리는 과정에서 우리는 탄소 배출이라는 불편한 짐을 지게 된다. 어떻게 하면 여행자와 여행지가 모두 행복할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에너지를 덜 사용하고, 쓰레기를 줄이고, 로컬 문화를 소비하는 것만으로도 지속가능한 여행을 만들어 갈 수 있다. 탄소 발자국 줄이기부터 시작해 보자. 멀리 가지 않아도, 거창한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도 누릴 수 있는 보물 같은 국내 여행 콘텐츠가 차고 넘친다.
기존 건축물을 최대한 활용하는 그린 리모델링이 대세다. 밀양은 고택 종갓집을 활용한 전통체험 사업이 활성화된 지역이다. 숙박이 이뤄지는 교동 향교마을 손대식 고가는 문화재청과 밀양시가 후원하는 고택 종갓집 활용 사업지다. 전통 한옥 양식을 개축 없이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최소한의 리모델링으로 현대식 시설을 갖췄다. 얇은 창호지 너머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잠을 청하면 약간의 불편함도 낭만이 된다.
ESG여행은 곧 ‘공정여행’이다. 로컬 특산물을 활용한 베이커리, 지역 이름이 들어간 술·음료 등을 우선 소비함으로써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 ‘밀양클래식술도가’는 밀양의 햅쌀 등을 이용해 다양한 전통주를 생산한다. 이곳만의 독특한 숙성 비법은 클래식 음악이다. 양조장을 가득 채운 웅장한 클래식에 맞춰 거품을 ‘퐁퐁’ 뿜으며 발효되는 전통주 향만으로도 술기운이 얼큰하게 오르는 듯하다.
양조장에 딸린 카페 표충로에서는 비빔밥·두부김치·파전 등 정갈한 우리 음식과 다양한 막걸리를 페어링해 즐길 수 있다. 배현준 공장장은 “밀양탁주, 클래식 청주 등이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며 “최근엔 스타워즈의 캐릭터 스톰트루퍼와의 협업을 통해 2030세대를 타깃으로 한 ‘스톰탁주’를 출시했다”고 말했다. 뚜껑·라벨을 장식한 스톰트루퍼 캐릭터와 깔끔한 뒷맛 덕에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젊은 층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누구나 가볍게 마실 수 있는 6도부터 술을 즐기는 애주가를 위한 17도까지 다양한 라인으로 출시됐다.
간척사업을 위해 방조제 시공에 들인 시간만 무려 18년. 새만금을 원래의 주인인 자연에 돌려주기 위해 인간은 또 한 번 거대한 계획을 세웠다. 축구장 면적의 약 110배에 달하는 78만5892㎡ 부지에는 148과 396종의 생물이 자유롭게 서식한다. 생물서식습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습지관찰대·탐조대 역시 인간의 모습을 철저히 드러내지 않도록 설계됐다.
산책로에서 시멘트가 굳기 전 이곳을 다녀간 생명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고라니·삵 등 야생동물의 발자국이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울퉁불퉁한 길이 거슬릴 법도 하지만, 이 자취조차 자연의 섭리이기에 억지로 보수하지 않았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해법은 멀리 있지 않다.
새만금환경생태단지는 출발지에서 새만금환경생태단지까지 오고 가는 친환경 전기버스를 운영한다. 5명 이상 단체 예약하면 무료로 무공해 전기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환경생태단지 내부에서는 자전거·휠체어 등 다양한 친환경 이동수단을 빌릴 수 있다. 차량 이용이 어려운 뚜벅이 여행자를 위해 평창군은 ‘평창관광택시 투어’를 지원한다. 테마별 코스에 따라 꼭 필요한 곳만 편리하게 택시를 이용함으로써 탄소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
밀양= 박소윤 한국경제매거진 여행팀 기자 sos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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