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다음달 중순까지 이어지는 미국 출장 기간에 실리콘밸리에 들러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등을 만나는 일정을 최종 조율 중이다. 정보통신기술(ICT)업계 ‘빅샷’과의 교류를 통해 삼성의 미래 사업을 구상하고 기업 간 협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분석된다. 미·중 반도체 패권 전쟁과 소비 침체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이 회장이 미국 출장을 통해 위기 돌파 방안을 찾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0일 산업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일정에 동행하기 위해 이르면 이번 주말 미국으로 출국한다. 이 회장의 미국 출장 일정은 5월 둘째주(10~16일)까지 잡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의 다음 재판이 오는 5월 26일 열리기 때문에 미국 장기 출장에 걸림돌은 없는 상황이다.
이번 방미 초반에는 경제사절단 일원으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미국 반도체지원법 관련 정부 간 협상을 측면 지원하고 미국 정관계 인사에게 삼성의 상황을 전달할 방침이다.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JY표 신사업’인 바이오 분야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모더나, 바이오젠 등의 CEO와 만나 협력 관계를 강화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내달 첫째주 동부서 일정 소화…버라이즌·모더나 등 방문 가능성
이 회장은 부회장 시절부터 통신장비 사업에 관심을 두고 적극 육성하고 있다. 5세대(5G) 보급이 확대되면 덩달아 통신장비 수요가 커질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2020년 미국 3대 통신사인 버라이즌과 66억달러 규모 통신장비 납품 계약을 체결한 배경엔 이 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있었다. 최근엔 글로벌 통신업체 T모바일의 미국 5G망 구축 사업에 삼성전자가 참여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미국 동부에 있는 바이오기업 본사를 이 회장이 찾을 가능성도 크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본사가 있는 모더나는 삼성과의 관계가 끈끈하기로 유명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을 위탁 생산한 경험이 있다. 보스턴에는 세계 최대 규모 바이오 클러스터도 있다.
이 회장은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CEO와 만나는 일정을 최종 조율 중이다. 애플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에선 대규모 물량을 사주는 ‘큰손’ 고객이다. 예컨대 삼성디스플레이는 아이폰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애플에 납품한다.
피차이 CEO와 이 회장의 관계도 끈끈하기로 유명하다. 구글이 2016년 ‘픽셀’폰으로 대표되는 스마트폰 사업을 시작하면서 경쟁관계라는 인식이 있지만 사실 두 회사는 오랜 기간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구글 폰에 들어가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구글의 인공지능(AI) 반도체는 삼성전자가 수탁 생산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삼성전자와 구글이 XR(혼합현실) 기기와 관련한 협업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 회장은 피차이 CEO와 만나 신사업을 논의하고 최근 이슈가 된 갤럭시 스마트폰의 기본검색 엔진 관련 협상도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이 회장은 정치적인 환경을 감안해 텍사스주 테일러에 있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 신축 현장엔 방문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계 관계자는 “이 회장의 출장은 ‘네트워크 강화’와 ‘미래 사업 구상’이 중심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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