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권력을 잡은 이들은 자신의 기준에 맞춰 역사적 사실을 재단하고 싶은 유혹에 종종 빠진다. 영국 역사가 에릭 홉스봄이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파했듯, 과거 사실에 대한 재구성이 현재 정치 세력의 정당성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슷하지만 좀 더 우스꽝스러운 시도가 문재인 정부에서도 있었다. 2017년 취임 한 달 즈음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가야사(史) 복원을 국정과제에 포함시킬 것을 지시했다. 가야가 영남과 호남에 걸쳐 존재했던 고대 국가인 만큼 관련 연구를 통해 동서 화합을 이끌어내겠다는 것이었다. 1600년 전에 사라진 지역 세력을 조명해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 세력의 정당성을 강화하겠다는 시도가 통할 리 없었다. 얼마 안 되는 고고학 연구 지원 예산이 가야사에 집중됐지만 별 성과 없이 흐지부지됐다.
소극(笑劇)으로 끝난 가야사 복원 시도와 달리 여당 최고위원들의 발언은 막 출범한 지도부에 치명타를 안겼다. 갤럽 여론조사를 기준으로 전당대회가 열린 3월 둘째주 38%로 올랐던 당 지지율은 32%까지 곤두박질쳤다. 김 최고위원 처리를 놓고 김기현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이 충돌하기도 했다.
정치역학적으로 역사적 사실과 관련된 논란은 여당에 불리하다. 순수 친노·친문 세력을 등에 업고 창당한 더불어민주당은 지지자들 사이에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식차가 비교적 작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부터 안철수 의원까지 문 정부를 반대하는 세력을 폭넓게 규합했다. 보다 다양한 지지 세력을 포괄하는 ‘대중정당’으로서 국민의힘의 면모는 지난해 대선과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 핵심적인 이유다. 하지만 역사 해석 등을 놓고 특정 보수 세력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중도층을 중심으로 지지 세력이 이탈할 여지가 커진다.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지만 정치인이 역사학자는 아니다. 윤석열 정부의 성공보다 역사 이슈에 대한 자신의 입장 표명이 중요한 것인가. 아무쪼록 다른 여당 인사들도 이번 사태를 거울 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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