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례를 들자면 “청년 자살률은 그 사회 행복도의 바로미터다” 정도로 쓸 수 있다. 새로 태어나는 사람은 계속 줄어드는데 20대와 30대 자살률은 늘다 못해 폭발하는 중이다. 2030 청년층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다.
또래 친구들과 가끔 이런 농담을 한다. “우리나라 인구 피라미드는 목 달린 사람 머리처럼 생겼잖아? 그런데 턱이 자꾸 갸름해진다? 애들이 자꾸 죽어.” 그러면 이야기는 대개 “그러니까 우린 절대 자식 안 낳을 거야” 내지는 “아, 진짜 자살 마렵다” 정도로 끝난다. ‘마렵다’는 뜻은 생리적 욕구를 참고 있는 감각으로, 저질러버리면 너무 시원하겠지만 상황이 허락하지 않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자살이 마렵고 이민도 마렵고 무언가 계속 ‘마렵다’는 공감을 나눈다.
윗세대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힘든 건 알겠으나 구체적으로 뭐가 그렇게 문제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하다. 온라인에서 표출되는 MZ의 분노는 극렬한데 오프라인에서 보이는 행태는 회피적이다. “단군 이래 최대 스펙에도 취업이 안 되는 이유는 무능한 586과 X세대가 철밥통을 차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공격적인 표현을 서슴없이 사용하나, 갈등이 생기면 무단결근 후 연락도 받지 않는 ‘잠수 퇴사’를 벌이거나 전화 통화 따위를 두려워하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그 혼란스러움이 바로 청년이 겪는 어려움의 핵심이다. 부모님은 하나 또는 둘 뿐인 자식을 위해 노후자금을 깎아가며 전폭적 지원을 해주셨다. 부모님뿐 아니라 세상 모든 스피커가 ‘나’는 특별하다며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했다. 혼란은 학창 시절부터 이미 시작됐다. 하고 싶은 것이 분명한 친구들은 극소수였다. 그마저 절반 정도는 부모님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착각했을 뿐이다. 원하진 않았지만 다 받았으니 기대만큼 잘해야 하기는 하겠고….
모두 ‘주변미터’ 때문이다. 주변미터란 주변 사람들을 바로미터로 삼은 것이다. 주변미터에 따르면 우리 대부분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평범했고, 스스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나 기대에 맞추려 노력했다. 특별하지 못한 나 자신에 죄책감이 크다. 세상이 만만찮은 것도 아주 잘 안다. 역시 주변미터에 따르면 부모님이 일터나 가정에서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단다. 세상이 만만하면 부모님도 행복했을 것이다. 우리는 나 자신과 현실이 모두 불만족스럽다. 부모님처럼 불행한 부모가 되기도 싫다. 올해 2월, 구직도 취업 준비도 안 하고 그냥 쉰 청년이 50만 명이란다.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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