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창사 후 25년만에 매출 3000억원을 돌파한 법무법인 율촌의 강석훈 대표변호사가 ‘올해 경영전략의 핵심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내놓은 답이다. 율촌은 지난해 매출 3040억원(국세청 부가가치세 신고 기준)을 올렸다. 전년보다 몸집을 13% 불리며 ‘연매출 3000억원 클럽’에 진입했다. 그럼에도 강 대표변호사는 “신산업을 다루는 전문조직 없이는 금세 성장세가 둔화될 것”이라며 긴장감을 놓지 않았다.
김앤장과 광장, 세종, 화우 등 다른 대형 로펌들도 전문조직 확대를 통한 수익원 다변화에 한창이다. 토큰증권, 인공지능(AI), 플랫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관리,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조직을 꾸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재 영입전쟁에도 더욱 불이 붙는 형국이다.
로펌들은 경기침체에도 일감이 늘어날 수 있는 분야를 물색하며 돌파구를 찾고 있다. 부동산시장 한파와 관련한 조직을 줄줄이 설립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앤장은 지난해 11월 건설·부동산, 도산, 구조조정, M&A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100여명으로 구성된 ‘부동산 PF 위기대응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광장과 태평양·율촌·세종·화우·지평·바른 등도 전문가 수십명을 투입해 비슷한 조직을 세웠다. 정계성 김앤장 대표변호사는 “대내외적 불안요인들로 올해 역시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다”며 “전문조직 운영을 통해 시장의 변화에 맞는 대처방안을 기업들에 신속하게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 발전으로 탄생한 신산업과 관련한 일감을 선점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창립 20주년을 맞은 화우는 올 들어 ‘신사업팀’을 그룹으로 격상시켜 AI와 플랫폼, 모빌리티, NFT(대체불가능토큰), 메타버스 등 새로 태동한 산업의 여러 법률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세종도 지난달 말 이같은 성격의 ‘신사업플랫폼팀’을 정보통신기술(ICT)그룹에 별도로 꾸렸다. ICT·친환경에너지·디지털금융을 미래 먹거리로 삼은 율촌 역시 최근 ‘토큰증권 TF’를 만드는 등 신산업 전문성 강화에 한창이다. 광장은 AI의 등장으로 나타날 수 있는 법률문제를 전담하는 팀을 구성 중이다. 정진수 화우 대표변호사는 “과거엔 법률 종류를 기준으로 조직을 꾸렸지만 이제는 산업별로 특화된 전문조직을 만드는데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분야별 전문조직 강화를 위한 스카우트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김앤장이 올초 이호재 전 서울고법 판사·박성준 전 부산고법 판사·정선균 전 대법원 재판연구원 등 법관 9명을 영입한 가운데 다른 로펌들도 전력 보강에 열을 올리는 양상이다.
광장은 성창호 전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 등 법관 5명과 김형근 전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 권태경 전 금융감독원 특별조사국 부국장 등을 변호사로 영입했다. 이태호 전 외교부 2차관과 유재철 전 중부지방국세청장, 송영훈 전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 본부장보도 고문단에 합류했다. 율촌도 이광선 전 지평 노동그룹장과 국가정보원 2차장 출신인 최윤수 변호사, 최웅영 전 서울고법 판사, 김경 전 SK이노베이션 재무실장, 정용걸 금감원 저축은행감독국장 등을 영입했다. 세종은 강문경·권순열 전 서울고법 판사, 김민형 전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장, 디지털포렌식 전문가 에드워드 문 전 삼정KPMG 고문 등이 새 식구로 합류한 데 이어 최근엔 정연아 변호사를 비롯한 위어드바이스 변호사 5명이 한꺼번에 이직해 신사업플랫폼팀의 주축으로 활동하고 있다.
태평양은 김희관 전 광주고검장을 대표변호사로 영입한 데 이어 채규하 전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과 이기영 전 금감원 회계조사국장, 최성락 전 식품의약품안전처 차장을 고문으로 맞았다. 화우는 과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 총수들을 변호했던 조준형 전 삼성전자 부사장과 최종문 전 외교부 2차장 등을 영입했다. 대륙아주는 한승희 전 국세청장, 지평은 세아홀딩스 부사장 출신인 백선우 외국변호사, 바른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혼소송을 맡았던 김현정 전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를 새 식구로 데려왔다.
‘종합로펌 도약’을 내건 형사소송의 강자 YK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문가들을 대거 끌어모으고 있다. 김경(기업법무) 김학훈(M&A) 이기선(인사·노동) 추원식(금융) 등 대표변호사 7명을 포함해 40여명이 새로 합류했다.
세종은 이달 초 ‘아시아 금융허브’인 싱가포르에 사무소를 열었다. 기업들의 해외 생산기지인 베트남·인도네시아와 금융 중심지인 싱가포르에 모두 거점을 둠으로써 동남아시아 법률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오종한 세종 대표변호사는 “한국 기업의 해외 투자뿐만 아니라 동남아에 거점을 둔 글로벌 기업들의 한국 투자에 필요한 법률자문에도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동남아 시장을 둘러싼 로펌들간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현재 인도네시아엔 태평양·율촌·세종·화우·지평·바른이, 싱가포르엔 김앤장·태평양·바른이 먼저 진출해 영업망을 넓히고 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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