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구글, 애플, 아마존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대규모 해고 뉴스가 화제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파격적인 연봉 인상과 함께 몸집을 불리던 빅테크 기업의 갑작스런 변화에 혼란스럽기까지하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미국은 ‘at will Employment’ 라는 근로계약을 맺으며 상대적으로 고용 유연성이 높고 해고가 용이한 구조다. 하지만 국내는 사정이 다르다. 대부분의 기업이 필요한 인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고, 근로계약 기간의 정함이 없으며, 정당한 사유가 있지 않은 이상 해고는 어렵다. 그렇다 보니 국내 기업들은 채용 규모를 어떻게 해야 할지, 조직 별 인력 규모는 어느 정도가 적정한지 항상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약 2년 전 국내 한 시중은행에서 약 2300명에 달하는 대규모 희망퇴직을 실시했는데, 주목할 점은 희망퇴직을 실시한 이후 퇴직자를 재채용했다는 사실이다. 퇴직자를 다시 채용한 이유에 대해 해당 은행에서는 업무 차질이 우려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국내기업의 한 인사 임원은 “새로운 사업을 하고 싶어도 마땅한 사람이 없다. 조직에 사람은 많은 것 같은데, 회사가 추진하는 방향에 맞는 능력 있는 인재를 찾기가 쉽지 않다"며 회사의 ‘스킬갭’ 현상을 걱정했다. 스킬갭은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 수준에 비해 현재 구성원의 역량이나 전문성 수준이 부족한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스킬갭이 커지면 회사에 직원은 많지만 쓸 만한 사람이 없는 ‘인재 패러독스’ 현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스킬갭 현상을 줄이고 인재 패러독스를 해소하는 것이 지금 경영환경에서 HR의 핵심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쓸 만한 인재가 얼마만큼 필요한지 예측하고 대비하는데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이러한 문제의식의 출발점으로서 인력계획의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인력계획이란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인력의 수요를 예측하고, 예측한 인력 수요에 대비해 역량을 갖춘 인력을 어떻게 확보할지 준비하는 일련의 활동을 말한다. 인력계획을 지칭하는 개념은 몇 가지가 있는데, 20세기 중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Manpower Planning', 그 이후 등장한 'Workforce Planning', 최근 들어 각광받기 시작한 'Strategic Workforce Planning'이 대표적이다. 어떤 용어를 사용하던 인력계획은 필요한 인력의 수요를 예측하는 활동이라는 데는 변함없지만 세부적인 접근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기업에서 먼저 활용하기 시작했던 Manpower Planning은 기본적으로 업무환경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현재 직원수(Headcount)가 적정한지 파악하는 방식이다. 직원 수를 헤드카운트라고 표현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필요한 사람이 단순히 몇 명이 필요한가가 주된 관심사다. 이는 업무를 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확인하는 업무량 조사 방식으로 진행된다. 해당 업무량을 소화하는데 현재 직원수가 충분한지 또는 부족한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해당 방식은 숫자라는 정량적 데이터로 진행되므로 언뜻 과학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업무량을 조사해보면 업무성격이나 상황에 따라 소요되는 업무시간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가 나오기 일쑤이다. 특히 요즘과 같은 지식근로 업무환경에는 해당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기에 무리가 있어 보인다. 오늘날의 업무는 수시로 변하기도 하며 없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업무가 갑자기 생기기도 한다.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시간이 휠씬 더 많이 필요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협업으로 업무시간이 변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일을 하는 사람 역시 표준화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같은 업무량을 소화하더라도 보통 사람이라면 5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역량이 뛰어난 사람은 1시간만에 하기도 한다. 과거의 노동근로 중심의 업무환경일때는 사람에 따른 업무시간 편차가 크지 않았지만, 지식근로 위주의 오늘날 업무환경에서는 이러한 편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그리고 몇몇 기업에서는 특정 시점에 필요한 인력 수 만을 파악해 인력수요를 예측하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있다. 특정 시점에 파악한 필요 인력 수는 그 순간이나 단기간에만 의미를 가지게 되고, 조직운영 방향, 업무범위, 업무수행자 등이 조금만 변해도 산정된 인력 수는 더 이상 적정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즉, Manpower Planning 방법은 ‘환경이 안정적이고 변화가 거의 없을 때’ 활용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조직의 상황이 바뀔 때마다 매번 업무량을 다시 조사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력계획은 한번 하고 마는 일회성 이벤트가 되기 십상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법으로 등장한 것이 Workforce Planning이다. 해당 방식의 핵심은 인원 증감에 영향을 주는 핵심변수인 ‘인력동인’에 초점을 두고 인력계획을 한다는 점이다. 인력동인은 하는 일이나 조직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생산팀의 경우에는 제품별 생산량, 영업팀은 인당 매출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인력동인을 활용한 인력계획은 인원과 인력동인 간에 관계식을 설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해당 관계식에 의해 제품별 생산 목표에 따라 생산팀의 인원을 예측하고, 매출 목표에 따라 영업팀의 인원을 예측하는 방식이다. 객관적 데이터를 통해 인력수요를 예측한다는 측면에서 과거 대비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여전히 ‘전략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면서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방법이 Strategic Workforce Planning이다. 기존 인력계획 방식과 다른 주요한 차이는 인력수요 파악에 있어 인력 수 뿐만 아니라 질적 측면을 함께 고려한다는 점이다. 앞서 설명한 업무량이나 인력동인을 통한 인력수요 예측 방식은 양적으로만 접근한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Strategic Workforce Planning은 ‘어떤 요건’을 갖춘 사람이 ‘얼마만큼’ 필요한가를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 즉, 양과 질을 함께 고려하는 방식이다. 해당 방법을 통해 조직 내 인원 분포를 확인함과 동시에 인적 역량의 분포까지도 확인할 수 있어 인력 운영의 다양한 대안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업무 적임자 배치, 역량에 따른 업무 배분 등 인력 운영을 최적화 할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지원한다.
하지만 ‘인력계획 방법론은 꼭 이것이어야 한다’라는 정답은 없다. 다만, 인력계획을 준비하고 추진함에 있어서 ‘우리’와 ‘왜’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마다 업종도 다르고, 한 회사 내에서도 조직 별로 일의 형태나 일하는 방식은 상이하다. ‘우리’ 조직의 업무는 안정적인지, 변화가 많은지, 인원에 영향을 주는 변수는 있는지, 누가 업무하는 지에 따라 편차가 있는지 등을 확인하여 우리에게 맞는 인력계획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왜’ 인력계획을 고민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인력계획의 이유는 인건비 효율성 향상, 인력 재배치, 인력 증감 변화요인 대응, 원활한 비즈니스 실행 지원 등 회사마다 다양할 것이다. 왜 인력계획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어떤 결과물을 보고 싶은 것인지 등이 먼저 고민되어야 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실제 많은 기업들이 인력계획을 하다 보면 방법론이나 결론으로 나오는 수치에만 관심을 가지며 점차 ‘왜’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숫자 이면에 숨은 통찰을 찾기보다는 이리저리 숫자를 맞추는데 골머리를 썩거나 연례행사에 형식적인 양식 채우기에 급급하기도 한다. 효과적인 인력계획을 위해서는 ‘우리’를 규명하고 '왜'를 알면 '어떻게' 할지와 ‘무엇을’ 산출하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현재 인력계획을 고민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업무를 하는지, 그리고 인력계획을 왜 하려고 하는지 다시 한번 떠올리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김태형 MERCER Korea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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