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과 산불로 어려움을 겪는 스페인 농민들의 시름이 더 깊어지고 있다. 굶주린 토끼들이 농장을 습격하면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4일(현지시간) 심각한 가뭄을 겪고 있는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주의 농민들이 물 부족에 더해 농작물을 먹어 치우는 토끼들로 인한 재앙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여름이 기록적으로 더웠고 겨울은 건조했던 탓에 스페인 내 대부분의 지역이 심각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가뭄 때문에 먹거리가 부족해지자 토끼들이 농장으로 달려와 어린 밀과 보리, 포도 등 과일나무 껍질을 먹어 치우고 있다는 것이다.
카탈루냐의 농민 알렉 푸아 씨는 "팬데믹으로 2년간 아무도 토끼 사냥을 할 수 없었고 토끼들은 점액종증(토끼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면역까지 생겼다"며 "암컷 토끼는 두 달마다 7~8마리의 새끼를 낳는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카탈루냐주 정부는 오는 9월까지 25만마리 이상의 토끼를 사살해야 한다고 밝혔으나, 이는 지역 사냥꾼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는다고 가디언은 보도했다. 주 정부는 토끼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 토끼 굴에 넣으면 독성 포스핀(인의 수소화합물) 가스를 반출하는 인산 알루미늄 사용을 허가하기도 했다.
포도나무와 올리브, 병아리콩 등을 재배하는 농민 후안 삼보다 씨는 "올해도 작년처럼 건조하다면 포도나무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가뭄이 심각해지자 지난 2월 카탈루냐주 당국은 농업용수 사용량을 40%, 공업용수 사용량은 15% 줄이고, 생활용수는 주민 1명당 하루 평균 물 공급량을 기존 250L에서 230L로 줄이는 등의 조치를 시행했다. 그러나 다음 달 기초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역 의원들이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면서 추가 감축에 대한 합의는 이뤄지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자 농민들은 가뭄에 자체 대응하고 있다. 포도나무 주변에 잡초를 남겨두면 아침 이슬이 포도나무 잎뿐만 아니라 잡초에도 맺혀 나무가 가뭄에 더 잘 견딜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메를로나 샤르도네와 같은 프랑스 품종 대신 재배 주기가 더 긴 토종 품종으로 갈아타고 있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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