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7년 전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주장으로 제기된 민사 재판이 시작됐다.
뉴욕타임스(NYT)는 25일(현지시간) 뉴욕 남부연방지방법원이 이날 9명의 배심원단 선정을 완료하고 변호인의 모두 발언을 청취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소송을 제기한 인물은 패션잡지 엘르의 칼럼니스트였던 E. 진 캐럴(79)이다. 캐럴은 1996년 봄 봄 뉴욕 맨해튼의 고급 백화점에서 우연히 마주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여성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데 조언을 해달라"며 유인했고, 이후 탈의실에서 성폭행을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캐럴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건 이전부터 얼굴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캐럴 측 변호인은 "이 사건으로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려던 캐럴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었다"며 "이번 재판은 정의를 구현하고 캐럴이 자신의 인생을 되찾을 기회"라고 소송을 제기한 이유를 밝혔다.
이어 "증거를 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 재판과 관련해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서 성폭행 시도 과정에서 발생한 폭행에 대한 피해보상과 함께 징벌적 배상을 요구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캐럴이 지난 2019년 비망록에서 처음 이 같은 주장을 했을 때부터 일관된 입장을 이어왔다.
성폭행 시도 주장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그 여자는 내 타입이 아니다"면서 "(그 주장은) 사기이고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도 피소되기도 했다.
이날 재판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직접 증언대에 서서 자신의 입장을 밝힐 수도 있지만, 다수의 매체는 트럼프가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리라 관측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법률대리인으로 참석한 조 태커피나 변호사는 캐럴 측의 주장에 당시 경찰 신고나 진료 기록이 없고, 백화점 내 목격자도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원고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와 함께 캐럴의 소송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타격을 주겠다는 정치적인 목적과 함께 비망록을 팔기 위한 경제적인 목적에서 꾸며진 것"이라는 주장도 했다.
민사 재판이 열리는 장소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반감 여론이 높은 뉴욕 맨해튼에서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한 듯 배심원단에게 "트럼프 전 대통령을 미워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곳은 투표소"라며 공정한 재판을 당부했다.
이번 민사소송은 엄격한 증거를 기반으로 유·무죄를 가리는 형사 소송과 다르다. 피고인이 혐의를 부인하더라도, 원고가 더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출하면 배심원단으로부터 승소를 이끌어낼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성폭력 시도가 없었다"고 주장하더라도, 캐럴 측이 더 배심원단을 설득한다면 재판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것.
트럼프 전 대통령은 캐럴과의 민사 재판 외에 성 추문 입막음용 돈 지급과 관련한 기업 문서 조작 혐의로도 기소돼 맨해튼 형사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4일 재판에 출석했다.
지난 13일에는 뉴욕주 검찰이 제기한 금융사기 민사소송에서 비공개로 증언했다.
자산가치 조작 혐의와 관련해서도 민사 소송이 제기됐는데, 정식 재판은 올해 하반기로 예정돼 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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