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교항곡의 아버지' 하이든의 참맛을 보여준 무대

입력 2023-04-27 18:36   수정 2023-04-28 00:36

18세기 서양음악은 무대에서 접하기가 어렵다. 실황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귀한 경험이다. 작곡가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C.P.E Bach)의 음악이라면 더욱 그렇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여러 자식 가운데 음악적으로 가장 뛰어났고 당대에는 아버지와 명성을 나란히 했을 정도였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의 음악을 실제로 듣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이 26일 서울 신천동 롯데콘서트홀에서 개최한 ‘한경 아르떼 더 클래식 2023’ 네 번째 공연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첫 곡은 C.P.E 바흐의 교향곡으로 알레그로 악장부터 바로크 시대의 음악 특성을 숨기지 못했다. 날렵하고, 예리한 타격감이 객석까지 전달됐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에서 지휘봉을 잡았던 권민석(38)은 다이내믹과 리듬을 더욱 강조했다. 단원들이 공연장 컨디션에 적응하는 과정이었는지 지휘자가 의도했던 최적의 밸런스가 날카롭게 살아나지 못한 적도 있었지만 고음악의 매력은 충분히 전달됐다.

C.P.E 바흐를 높이 평가했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모테트 ‘환호하라, 기뻐하라’가 다음 곡이었다. 이탈리아 교회음악을 경험한 모차르트가 내놓은 걸작으로 모테트는 종교음악으로 쓰이는 성악곡이다. 경쾌한 도입부로 시작된 첫 번째 아리아에서부터 젊은 시절 모차르트의 작품임을 쉽게 눈치챌 수 있는 작품이다. 바로크 시대에서 모차르트의 고전주의로 넘어가는 서양음악사의 물줄기를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 배치였다.

노래는 소프라노 서예리가 불렀다. 그는 명료하고 아름다운 발성으로 작곡가 모차르트를 대변했다. 서예리는 차분한 분위기로 노래를 시작했으나 모차르트 특유의 생기 넘치는 에너지를 머금고 있었다. 레치타티보(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형식)를 지나 다음 아리아로 넘어가자 지극히 드라마틱하고 동시에 오페라적인 요소들이 강조된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마지막 ‘알렐루야’가 연주될 때엔 모차르트 음악 특유의 아름다움이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종국이 가까워지면서 서예리는 절제된 음악을 서서히 풀어주며 흐름을 고조시켜 한 편의 오페라를 방불케 했다.

서예리의 앙코르는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 가운데 ‘울게 하소서’였다. 오케스트라의 편성이나 앞서 연주한 프로그램을 고려했을 때 아주 적절한 선곡이었다. 절절한 그녀의 연기와 목소리는 순식간에 관객들을 오페라 속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2부에서는 하이든 교향곡 104번이 연주됐다. 이날 공연 중 완성도가 가장 좋았다. 1부가 고음악 특유의 날렵하고 예리한 음악을 선보였다면 2부는 고음악과 풍성한 현대적인 사운드의 절충안을 찾았다.

느린 서주로 문이 열리자 한경아르떼필은 지금까지 쌓아온 역량을 오롯이 펼쳐 보였다. 우선 밸런스가 준수했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악기가 제 소리를 내주고 있었다. 섹션별로 주고받는 대화가 더욱 명료하게 강조되고 한 편의 이야기가 끊기지 않고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1악장이 끝나고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온 것도 관객들의 음악에 대한 솔직한 반응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하이든 시대에는 중간중간 박수가 나오는 일이 흔했다.

지휘자가 요구하는 순간적인 다이내믹 변화에도 음악적 흐름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마지막 악장에선 빠른 템포로 음악이 연주되는데도 노래의 흐름이 자연스러웠다. 한경아르떼필이 하이든 음악에도 충분히 적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휘자 역시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기보다 하이든 음악에 완전히 봉사하며 공연을 마무리 지었다.

하이든은 100개가 넘는 교향곡을 작곡해 ‘교향곡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그런 별명이 무색할 만큼 지금 시대에는 그의 교향곡이 아주 드물게 연주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 공연은 매우 특별했다.

권민석 지휘자는 지금까지 과소평가돼온 하이든 교향곡의 매력을 관객들에게 알려줬다. 마지막 곡이 끝나고 객석에선 오늘 무대를 준비한 지휘자와 연주자들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아마도 영국 런던에서 하이든 교향곡 104번이 처음 연주되고 당시 청중이 이 교향곡에 환호했었을 것처럼.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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