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논쟁’은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인식과 평가에서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역사전쟁과 역사바로세우기 논란부터 아직도 치열한 좌우 보혁 진영 다툼의 중핵이다. 그런 사정까지 감안한다 해도 우남에 대한 평가는 너무 짜다. 이성·객관·합리적으로 재평가할 때가 됐다. 이제라도 ‘우남의 강’을 제대로 건너지 못하면 한국은 G7(주요 7개국)이나 그 연장의 G8, G10 ‘자유 선진국’ 대열에 끼기 어렵다.
그에 대한 악의적 프레임은 크게 봐서 세 가지다. 첫째, 분단 책임론이다. 전문 연구가의 반론이 거듭 나와 있지만 좌파 이념에 매몰된 이들에겐 여전히 유효한 프레임이다. 해방정국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하려면 이것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정적들이 만든 독재 프레임도 그대로다. 하지만 비교정치 연구가들은 시민·국민이 물러나라고 해서 제 발로 물러난 독재자는 어디에도 없다고 한다. 독재자의 실각은 정권 혹은 국가의 붕괴와 동시·동일형이다. 우남은 그렇지 않았다. 지난달 4·19 주역 50여 명의 우남묘소 참배를 주도한 이영일 전 국회의원이 이번 세미나에서 분단·독재 프레임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짚어 주목을 끌었다. 우남을 대통령에서 끌어내린 그때의 청년들이 80대 국가 원로그룹이 돼 그를 긍정 평가하는 게 상전벽해다. 좋은 변화의 조짐이다. 셋째 프레임은 친일이다. 이 또한 다분히 악의적이다. 아직도 더 필요한가 싶을 정도로 연구가 쌓여가지만 굳이 외면하는 게 ‘반일종족주의’ 관점에 갇힌 한국 사회 한계다. 독립운동가들이 중용된 이승만 초대내각과 친일파가 득실득실했던 김일성 초대내각만 비교해 봐도 대강은 보인다.
이승만 재조명과 재평가는 민간의 연구와 노력만으로는 어렵다. 윤석열 정부가 더 적극 나서야 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은 70년 동맹관계의 중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양국 동맹의 출발점이 우남이 이뤄낸 한미상호방위조약 아닌가. 한국의 경제적 번영, 정치적 자유, 국제적 위상을 가능케 한 기반이다. 전쟁 폐허 최빈국과 세계 최강국 간의 이 조약은 세계 외교사에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유진오 초안의 제헌 헌법에서 사회주의 경제 요소를 뺀 게 우남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도 드물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민주주의·인권의 기반을 다진 건국 대통령의 번듯한 동상조차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맡은 이승만기념관 건립은 ‘우남 제자리찾기’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장소부터 상징성·보편성이 있어야 한다. 접근성도 중요하다. 용산공원도 좋고, 공간 조정으로 국회도 좋다.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르는, 상암동 외진 곳의 박정희기념관처럼 돼선 곤란하다. 대통령이 건립위원장을 맡아 상징적 역할 이상을 하면 좋겠다. 교과서 기술 등 뒷일도 많다.
이승만 폄훼를 일삼는 좌파 진영도 이제는 마음을 좀 열거나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 우남이 최소한으로라도 제자리를 찾을 때 백범(白凡)도 빛날 것이다. “나라 세운 대통령을 비난만 하고 초상에 모욕을 가해 대니, 저들이 추앙하는 인물도 인정 못 하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손손(損損) 게임’을 언제까지 할 건가.
지난날을 돌아보면 모두 신이 된다고 했다. 항일·건국 과정에서 누구라도 공(功)이 있고 과(過)도 있을 수 있다. 과에 대한 논란이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면, 최소한 공이라도 바로 보는 게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진짜 인프라 ‘자유민주주의 체제’ 설계자를 역사의 뒤꼍에 방치해선 안 된다. 신질서 구축의 국제 격변기에 한국이 다시 도약하기 위해 한 시대의 이 강을 건너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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