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로 2030세대 세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이어졌다. ‘인천 주택왕’ ‘광주(광역시) 빌라왕’ 같은 사기 사례가 전국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주택왕’ 별명이 붙은 인천의 한 건설업자는 2800여 채 주택으로 2700억원의 전세보증금을 제대로 돌려주지 못했고, 몇십 채 이상의 공동주택이 건물째 경매로 넘어갔다가 대통령 제지로 일단 중단되기도 했다. ‘인천 주택왕’과 ‘광주 빌라왕’의 경우 소개 브로커·중개사까지 결탁한, 처음부터 사기일 개연성이 높다. 반면 고금리에 집값 급락으로 결과적으로 사기가 돼버린 경우도 매우 많다. 이런 ‘깡통전세’ ‘역전세’까지 겹치면서 전세시장에 대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름 열심이지만 특단 대책은 쉽지 않다. 핵심 대책으로 야당들이 주장하는 공공매입과 우선매수권 등은 실현 가능한가.
피해 청년들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문재인 정부 때 임차인 보호를 명분으로 ‘임대차 3법’을 급히 만들었지만, 지금 같은 집값 하락기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전세금이 상대적으로 소액인 임차인은 전셋집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일정 금액이라도 우선해 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상승 때 집주인 요구로 전세금을 올려주느라 이런 변제금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천 미추홀구에서만 전세사기 피해자가 3000가구에 달한다는 사실은 전세로 사는 개인의 잘못 차원을 넘어섰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곳에서만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아파트·빌라가 2000가구에 육박하고, 이 가운데 경매에 넘어간 가구가 60%에 달했다. 전세금을 떼인 것도 청천벽력인데 소액의 변제금도 돌려받지 못하는 최악의 피해자를 위해 정부가 최대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전세사기는 기본적으로 부동산정책 실패에서 비롯됐다. 전임 문재인 정부의 헛발질이 근본 원인이지만, 정부의 연속성 차원에서 현 정부가 풀어야 한다. 정부·지방자치단체·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공에서 문제가 된 전세주택을 사들이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적당한 가격으로 해당 주택을 피해자가 구입할 수 있도록 우선매수권을 주는 특별법도 필요하다. 피해 상황에 맞춘 저리 대출 역시 강구할 만하다.
피해자 사정은 안타깝지만, 상황을 냉철하게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명백한 사기극과 ‘깡통전세’ ‘역전세’를 구별해서 보는 게 중요하다. 깡통전세는 집값이 전세금보다 싸지는 바람에 임대인(집주인)이 만기 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경우로 집값 하락기에 흔히 나타난다. 역전세는 전셋값이 입주 때보다 뚝 떨어져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을 말한다. 이 역시 금리가 오르고 그에 따라 집값이 하락할 때 나타나는 전세의 부작용이다. 지금 주택 임대시장에는 이런 것까지 겹쳐 혼란이 가중된다. 전세사기극도 처음부터 고의로 그런 것인지, 고금리에 집값이 급락하면서 결과적으로 사기가 돼버린 것인지 나눠서 봐야 한다. 모든 전세금 반환 갈등을 정부가 다 해결해줄 수는 없다.
공공매입은 ‘어떤 기관이, 무슨 돈으로’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비싸게 사면 납세자가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싸게 사면 임대인·임차인이 동의하지 않게 된다. 세입자 보증금 우선 반환도 채권 행사 관련 현행법령을 확 고치지 않고는 어렵다. 은행의 손실 분담도 정부가 강요해선 안 된다. 당장 구제 지원과 재발 방지 제도 개선을 나눠 봐야 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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