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 작가의 장편소설 <고래>가 2023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쇼트리스트) 여섯 편에 올랐다. 맨부커상이 부커상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한국 작품이 이 부문 최종후보에 네 번째 선정됐다. 2016년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았으며 이후 한강의 다른 소설 <흰>, 정보라의 소설집 <저주토끼>가 최종후보까지 진출했다.
5월 23일 <고래>가 두 번째 수상작이 될지, 관심이 폭증하고 있다.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기만 해도 세계적인 관심 속에서 판권 계약이 줄을 잇는데, 이미 국내외에서 <고래>가 유영하기 시작했다.
<고래>는 2004년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으로 천명관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처음으로 쓴 작품이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고래>에 대해 “이런 소설은 없었다. 읽어보길 추천한다. 에너지에 휩쓸린다. 캐릭터는 비현실적이지만 있을 법한 이야기다. 착한 캐릭터는 아니지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며 아래와 같이 부연설명했다. “사악한 유머로 가득 찬 소설, 유머와 무질서로 전통적 스타일을 전복하는 문학 양식인 카니발레스크(Carnivalesque) 동화. 한국의 풍경과 역사를 관통하는 피카레스크(picaresque·악인이 주인공인 소설)식 탐구. 생생한 인물들은 어리석지만 현명하고, 끔찍하지만 사랑스럽다.”
<고래>는 한마디로 이상야릇하면서 독특한 작품이다. 문학동네소설상을 심사했던 임철우 작가는 당시 “그 풍부하고 기발한 상상력의 세계 속에, 보다 구체적인 인간 현실과 삶의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성찰까지 아울러 담긴다면, 머잖아 우리는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 같은 감동적인 소설을 만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평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고래>의 휘몰아치는 이야기 폭포수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허우적대다가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머잖아가 아니라 바로 지금 만났잖아”라고 중얼거렸을 게 분명하다.
소설은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와 2부에서는 산골 소녀에서 소도시의 기업가로 성공하는 금복의 일대기와 주변 인물들의 천태만상이 펼쳐진다. 3부는 감옥을 나온 뒤 폐허가 된 벽돌공장에 돌아온 금복의 딸인 지적장애인 춘희의 삶을 담고 있다.
수십 개의 에피소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고래> 속에는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가 다 모여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서 듣던 옛날이야기, 동화책에서 본 설화와 신화, 인터넷에 떠도는 엽기 유머가 TV 대하드라마처럼 유장하게 펼쳐진다.
옛날이야기인 듯한데 모퉁이를 돌면 우악스러운 춘희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현실감과 함께 이상하고 오묘한 기운을 뿜는 소설이다. 한마디로 소설에 대한 기존 상식을 보기 좋게 비껴가면서 놀랄 만한 풍성함과 톡톡 튀는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고래>에 ‘세상에 떠도는 얘기란 본시 듣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 이야기꾼의 솜씨에 따라 가감과 변형이 있게 마련이다’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천명관 작가는 이 소설에 대해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았을 뿐, 나는 별로 한 게 없다’고 피력한 바 있다.
주변에 떠도는 이야기를 엮어 세계를 놀라게 할 재능이 당신에게도 있을지 모른다. 지난해 영화 ‘뜨거운 피’로 감독 데뷔의 꿈을 이룬 데 이어 부커상 후보에 오른, 노력하는 행운아 천명관 작가의 <고래>를 읽으며 이야기를 수집해 엮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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