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간 무료 예식장을 운영하며 1만쌍이 넘는 부부를 결혼시킨 백낙삼 신신예식장 대표가 투병 끝에 28일 93세 나이로 별세했다.
백 대표의 부인 최필순(83)씨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해서 "(남편이) 지난해 4월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서 뇌출혈 진단을 받았고 1년 투병 끝에 오늘 숨졌다"고 밝혔다.
백 대표는 지난해 4월 옥상에 심은 채소를 보러 갔다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이송됐다. 의식은 회복했으나, 뇌출혈로 신체 활동 능력이 저하되면서 그동안 요양병원에서 지내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큰 아픔 없이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교육자의 꿈을 안고 중앙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했으나, 부모님의 사업실패로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졸업 1년을 앞두고 학업을 포기했다. 가족들은 백씨만 남기고 야반도주한 가운데 그는 길거리 사진사 일을 시작해 자리를 잡게 됐다. 이후 그는 자신처럼 형편이 어려워 결혼식을 치르지 못한 부부들을 위해 예식장을 만들었다.
백 대표는 그렇게 1967년부터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에서 신신예식장을 운영하며 예비부부들이 최소 비용으로 결혼식을 올릴 수 있도록 도왔다. 공간 사용료, 신부 드레스, 액세서리, 신랑 예복, 메이크업 등 모두 무료로 제공됐다. 기념사진 인화비만 내면 백 대표가 직접 예식 사진을 찍고 부부에게 선물했다. 그러다 지난 2019년 '헌신적인 사회봉사'로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은 뒤에는 사진값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예식장 관련해 모든 일을 도맡아 하던 백 대표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2021년 LG 의인상을 받기도 했다. 그가 지금까지 무료 예식장을 통해 결혼시킨 부부만 1만4000쌍에 달한다. 고객 대부분은 값비싼 결혼식을 치르기 어려운 신혼부부였다.
고인은 2021년 10월 13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그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공유하기도 했다. 그는 "1977년도에 이 예식장에서 결혼했다는 분한테 전화가 왔다. 당시에는 형편이 너무 좋지 않아 아무런 보답도 못하고 왔는데 지금은 부자 소리를 듣고 있으니 돈을 보내고 싶다고 하더라"며 "그래서 내가 너무 고마워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앞으로 사회에 더욱 봉사하면서 살겠다고 답장을 보냈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100살까지 예식장을 운영하고 싶다던 소원을 남겼다. 백 대표는 "100살이 되면 내가 결혼시켜 준 신혼부부 전화번호가 적힌 장부를 배낭에 넣고 전국 일주를 하고 싶다. 이들 부부가 얼마나 잘 사는지 찾아보러 떠나겠다"면서 "신랑, 신부들이 서로 자기 집으로 오라고 야단"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월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도 신신예식장을 찾아 백 대표를 만난 적이 있다. 백 대표가 투병 중이라는 소식이 접한 후 윤 대통령은 쾌유를 비는 난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백 대표의 아내 최필순씨와 아들 백씨는 향후에도 예식장을 계속 꾸려나갈 계획이다. 최근에는 옥상, 바닥 등에 투자해 리모델링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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