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이세요?"…슬세권·하이퍼로컬이 뜹니다 [더 머니이스트-심형석의 부동산정석]

입력 2023-04-29 07:30   수정 2023-05-02 10:35

"혹시… 당근이세요?"

퇴근길 전철역 출입구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대화입니다. 낯선 사람과 중고거래를 하는 모습인데 이제는 생소하지도 않습니다. 당근은 당근마켓이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서비스하는 플랫폼을 이야기합니다. 거래후기를 공유하며 공감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습니다.

슬세권이라 알려진 하이퍼로컬(Hyper Local)은 ‘아주 좁은 범위의 특정 지역에 맞춘’이라는 의미입니다. 슬리퍼와 같은 편한 차림으로 각종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주거권역을 뜻하는 ‘슬세권’과 비슷한 용어입니다. 신종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의 생활반경이 좁아지고 좁은 범위의 지역기반인 하이퍼로컬 서비스가 급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하이퍼로컬 플랫폼의 선두주자는 당근마켓입니다. 지역 기반의 중고 거래 플랫폼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지역 기반의 커뮤니티로 성장했습니다. 2022년12월 기준 당근마켓 누적 가입자 수는 약 3200만명에 이릅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62%가 사용한다는 말입니다. 미국에도 넥스트도어(Nextdoor)라는 유사한 서비스가 있습니다.


하이퍼로컬의 급성장은 데이터로도 확인됩니다. 대표적인 로컬가게인 편의점의 매출 성장세는 2021년 6.9%에서 2022년 10.8%로 늘었습니다. 2021년 편의점 3사의 매출비중은 대형마트를 넘었습니다. 작년에는 그 격차를 더 벌리는 중입니다. 2023년 1월의 매출동향을 봐도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모두 3%대의 역성장을 하고 있지만 편의점만 전년대비 8.4% 성장했습니다. 글로벌 시장 조사업체인 리서치앤드마켓은 2019년 9,730억달러 규모인 하이퍼로컬 서비스시장이 2027년까지 약 20% 성장해 약 3조6343억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하이퍼로컬 서비스는 우리나라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닙니다.

사실 역세권에서 파생된 슬세권은 부동산부문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주변에 쇼핑과 교육, 의료, 여가 등 대규모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아파트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도 진화해 단지 외부로 나가지 않더라도 단지 내에서 모든 활동을 즐길 수 있습니다. 조식 서비스를 포함해 헬스, 골프, 도서관 등은 기본이고 뮤지컬홀, 아이스링크, 인피니티 수영장까지 갖춘 단지들까지 입주하는 중입니다.

하이퍼로컬을 강화하는 것은 고령화입니다. 신종 바이러스가 아니더라도 고령화된 인구들은 멀리 가지를 못합니다. 운전도 힘들어지면 더욱 아파트 단지 주변에서만 활동이 제한됩니다. 우리와 같이 실버 주거시설이 부족한 나라는 더할 겁니다. 심지어 일본은 쇼핑난민(買い物難民)이라는 용어도 생겼습니다. 식료품이나 일용품 상점 이용이 어려운 주민들, 특히 고령자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일본의 쇼핑난민은 전국적으로 600만명으로 추산됩니다. 지방이나 교외지역의 인구감소로 쇼핑시설들이 없어지면서 불편을 겪는 실정입니다. 불편을 겪어보면 주변에 좋은 편의시설들이 많다는 것이 축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도심이 아니면 대형복합개발 사업은 성공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겁니다. 몇 개는 살아남겠지만 과거와 같이 차별화되지 않는 대규모 공간은 쇠퇴할 수도 있습니다. 우후죽순처럼 기획되는 대규모 개발사업은 낭비와 잉여로 퇴보할 겁니다. 반면 좋은 지역상권의 유휴부지는 규모가 적더라도 전망이 있습니다. 도심의 초역세권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업종구성(MD)이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지역과 공존하며 지역에 특화된 공간구성이 가능할 겁니다. 프롭테크 기업들은 이 공간을 새로움으로 포장할 겁니다.

MZ세대들 또한 하이퍼로컬에 열광합니다. 이는 하이퍼로컬이 일시적인 유행(FAD)이 아닌 트렌드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입니다. 로컬은 레트로와 결합해서 힙한 문화가 됩니다. 골목길 경제학자로 알려진 모종린 교수(연세대)는 젊은 세대가 로컬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 다움’, ‘동네 다움’을 추구하고, 동네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이퍼로컬 시대에는 과거의 유동인구란 개념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큰 상권이 작은 상권을 흡수한다는 빨대효과 또한 흐릿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하이퍼로컬 상권은 대부분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회복이 필요한 명동상권은 중국 관광객을 쳐다보는 중입니다. 지역 밀착, 더 세분화된 지역성을 강조하는 동네 기반의 거래활성화가 재조명될 겁니다. 지역소멸의 시대 어떤 하이퍼로컬을 만들어야 할 지 고민해야겠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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