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도요타의 사장이 돼주겠습니까?”
지난해 12월 태국 부리람의 인터내셔널 서킷. 사토 고지 당시 도요타 최고브랜드책임자(CBO)와 함께 자동차 레이스를 보던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사장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제안이 불쑥 튀어나왔다. 사람들이 가득한 경주장에서, 엔진이 내는 굉음 속에 전해진 승진 통보는 사토 CBO의 귀에만 똑똑히 들렸다.
지난달 1일 도요타 최고경영자(CEO)가 14년 만에 바뀌었다. 바통을 넘긴 도요다 사장은 회장직에 오르고 사토 CEO가 53세의 나이로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을 이끌게 됐다. 오너 기업에서 나온 회사원 출신 CEO에 대한 시선은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그러나 그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전기차를 중심으로 급변하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세계 1위’ 타이틀을 지켜내는 것이다.
그는 사내에서 ‘카 가이(car guy·자동차 애호가)’로 불릴 만큼 자동차에 애정이 깊다. 전 도요타 엔지니어인 후지무라 도시오 아이치 공과대학 객원교수는 “사토는 경력 초기부터 자동차 부품인 서스펜션과 브레이킹 시스템을 개발할 때 몇 번이고 직접 테스트 주행을 하며 차에 대한 사랑을 키웠다”고 전했다. 도요다 회장은 사내 인터뷰에서 “사토에게는 도요타를 이끌기 위해 필요한 두 가지 자질이 있다”며 “그는 젊고, 차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도요다 회장과는 렉서스 수석엔지니어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두 사람은 사무실보다는 함께 차를 타면서 또는 자동차 제조 현장에서 엔지니어들과 현안을 논의하고 차에 대한 열정을 나눴다. ‘겐바 정신(현장주의)’을 강조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도요타는 3년째 세계에서 자동차를 가장 많이 판 기업이다. 지난해 판매량은 1048만 대를 넘었다. 하지만 그중 전기차는 2만4466대로 전체의 0.2%다. 전기차 판매량에서는 세계 28위로 고꾸라진다. 지난해 출시한 첫 전용 전기차 ‘bZ4X’는 주행 중 바퀴가 빠지는 결함으로 한 달 만에 전량 리콜했다.
전기차가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트렌드가 될 때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판단 착오가 치명적이었다. 전기차가 등장해도 내연기관차와의 공존 기간이 상당할 것으로 예측한 것이다. 앞서 하이브리드차(내연기관과 배터리를 동시에 탑재한 차량)에서 거둔 성공도 발목을 잡았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전기차 전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최근 미국과 유럽이 내놓은 전기차 확대 전략은 자동차산업 생태계를 뒤흔들었다. 유럽은 2035년 이후 합성연료 이퓨얼(e-fuel)을 제외한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최근 통과시켰다. 미국은 2032년까지 판매되는 신차 중 전기차 비중을 67%까지 올리도록 배기가스 배출 기준을 강화했다. 도요타는 보조금을 무기로 자국 내 생산을 요구하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도 대응해야 한다. 최근 미 에너지부가 발표한 보조금 적격 전기차 리스트에 테슬라와 폭스바겐 등 미국과 유럽 브랜드만 포함됐다.
일본에서도 자국 대표 기업인 도요타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나카니시 다카키 나카니시자동차산업리서치 대표는 “뒤처진 전기차 사업을 사토 사장이 반전시키지 못하면 도요타의 미래는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테슬라 등 선두 주자와의 기술 격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목표치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크다. 산케이신문은 “현재 수준(2만4466대)에서 60배 이상 성장하겠다는 목표의 실현 가능성을 놓고 업계에서 회의적인 시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사토 사장이 당면한 과제는 전기차에 보수적인 임직원부터 변화시키는 것이다. 도요다 회장은 그를 후임으로 선택하며 “혼자가 아니라 팀으로 회사를 운영하라”고 당부했다. 구성원을 설득해 전기차 혁신에 동참시키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월급쟁이 CEO로서의 한계도 깨야 한다. 지난 1월 취임 발표가 나온 직후 외신에선 그가 다음 ‘도요타 사장’이 나오기 전까지 임시 CEO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도요다 아키오의 장남인 ‘도요다 5세’ 도요다 다이스케는 도요타의 자율주행 계열사 우븐바이도요타의 수석부사장이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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