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노사 이슈와 관련한 최근 판결들은 법원이 정의와 균형에 충실했는지 의구심을 자아낸다. 법원이 산업 현장과 사회의 안정을 외면하고 기존 대법원 판례를 존중한 기업들의 예측 가능성을 현저히 저해하는 판결을 연달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하급심은 하청업체의 단체교섭 상대방에 대한 판결에서 기존 대법원 판례를 뒤엎고 이른바 ‘실질적 지배력설’이라는 이론을 내세워 원청업체의 사용자성을 확대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실질적 지배력설은 특수한 사실관계에 기초한 일본의 파견 관련 판례에서 유래한 이론이다. 일본과 달리 사용자의 부당 노동행위에 엄격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는 한국은 사용자성 확대가 노동시장의 급격한 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또 대법원은 원청업체가 제조공정에서 전산관리시스템(MES)을 활용해 하청과 정보를 공유한 것을 ‘불법파견’으로 판단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이미 정보기술(IT)을 통한 협업이 보편화한 우리 제조업 현실에서 사실상 도급이 금지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미 국제적인 추세로 자리 잡은 도급을 통한 업무 효율화가 불가능하다면 우리 기업의 국제 경쟁력은 크게 약해질 것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하급심들은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정한 통상임금의 요건마저 무력화하고 있다. 많은 회사가 기존 판례를 신뢰해 재직자 한정 규정을 통해 통상임금 여부를 규정해왔으나, 최근 일부 판결이 재직자 한정 규정의 효력을 부정함에 따라 향후 법원의 판결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워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저성과자를 해고한 것이 위법이라는 대법원 판결도 있었다.
법원 판결의 예측성과 균형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현재까지 이뤄진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 107건 중 판례를 바꾼 사례가 45건에 달했다. 또한 전원합의체 중 전원일치 판결 비율은 16.3%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법원이 법적 안정성 추구보다 기존 법질서를 뒤바꾸는 결정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법원 내 구성원의 편향성 문제도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특히 민주노총 금속노조 법률원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대법원 사건에서 노조 대리인을 맡았던 변호사가 대법원 재판연구관에 보임되기도 했다. 노동계 편향적 판결들은 해당 사건은 물론이고 산업현장 노사관계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최근 들어 노동계에 우호적인 판결이 늘어나면서 회사 내 노사 문제를 노사 간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하기보다 소송부터 제기하고 보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이런 노사관계의 사법화는 ‘법과 원칙의 테두리 내에서 노사 자율 해결’이라는 노사관계의 대원칙을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소송 결과에 따라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일도양단식 결과를 받아들이도록 강제한다. 결국 양보와 타협을 통한 상생의 노사관계는 멀어지고 산업 현장에는 갈등과 대립만 남게 된다.
사법부는 법을 기반으로 공정한 판결을 하는 기관이지, 법을 뛰어넘거나 새로운 법을 만드는 기관은 아니다. 사법부가 법리와 판례에 충실한 합리적 판결을 내려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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