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 제조업과 서비스업체 10곳 중 3곳은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조차 내기 어려운 한계 상황(국회예산정책처 조사)에 처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글로벌 인플레이션 사태를 거치면서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미룬 탓이 크다. 이는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수와 수출이 마이너스 성장하는 부실 징후 산업군 비중이 늘고 있다는 산업연구원 분석은 시사적이다. 경쟁력을 잃어가는 산업이 증가하면서 해당 업종 영역에서 활동하는 한계기업도 급증하는 추세라는 분석이다. 지난 20여 년간 중국 특수에 가려진 한국 산업 경쟁력의 민낯이 드러나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하고 미·중 갈등과 지정학적 긴장, 보호무역 강화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위험이 커지고 있다. 자동차산업의 중심축이 전기차로 급격히 이동하면서 국내 자동차 부품사의 32.3%인 3200여 곳이 소멸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반도체를 비롯해 미래차와 배터리, 바이오 의약품 등 주요 전략산업 내재화를 위한 세계 각국의 공격적 산업정책도 전례 없는 일이다.
이 같은 환경 변화는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대응을 요구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한계기업과 산업에 투입한 자원이 새로운 성장동력과 신산업으로 흘러 들어가도록 유도해 생산성을 높이고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는 잠재 성장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한계기업과 함께 산업 구조조정을 병행해야 하는 이유다.
때마침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4개월 만에 3%대에 진입했다. 물가 안정 기대가 커지면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마치고 연내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너머에는 혹독한 경기 침체가 도사리고 있다. 지금이 구조조정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1980년대 초 오일 쇼크로 경기가 급격한 침체를 겪었지만 정부의 강력한 구조조정 덕에 1980년대 후반에 찾아온 3저(저금리·저유가·저달러) 호황의 과실을 누린 경험을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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