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순식간에 시가총액 7조8500억원을 증발시킨 ‘다단계 주가조작 사건’은 2019년 터진 라임펀드 사기 사건을 상당 부분 벤치마크한 흔적이 엿보인다. 레버리지를 활용하고 다단계 방식으로 감쪽같이 세를 키웠다. 라임펀드 사기와 본질은 같지만 피해 강도가 다르다. 사기단에 돈을 맡긴 자산가들의 손실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차액결제거래(CFD) 계좌는 투자원금(증거금)을 이미 다 날리고, 원금만큼 마이너스 손실이 추가로 발생했다. 그런데도 피해 보상을 요구할 곳이 아무 데도 없다. 비제도권에서 벌어진 탓에 폰지 사기의 가해자와 피해자 구분조차 모호하다. CFD 다단계 주가조작 사건의 이해를 돕기 위해 라임펀드 사태와 닮은 듯 다른 점을 비교 분석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계약 주체다. 펀드는 원금 이상 손실이 났어도 투자자는 원금 이상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다. 라임 무역금융펀드에서 투자금을 전액 날렸지만 거기까지였다. CFD 다단계 주가조작단 사례는 다르다. 4억원을 증거금으로 맡기면 증권사는 6억원을 더해 10억원을 대신 투자한다. 이번 무더기 연속 하한가로 주가가 80% 급락한 사례를 적용하면 8억원 손실이 발생했다. 원금 4억원을 다 날리고, 추가로 4억원을 더 물어줘야 하는 셈이다. 개인이 CFD 계약을 맺은 만큼 개인이 투자원금 이상의 손실을 물어줘야 할 판이다.
CFD 전체 피해자는 15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전체 피해자는 라임펀드 사태가 더 많았다. 2019년 말 1조6000억원대 환매 중단이 발생해 개인투자자 4035명과 법인 581곳이 물렸다. 하지만 개인 피해 규모는 이번 폰지 사기극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라임펀드 피해액은 대부분 은행과 증권사가 보상해줬다. 라임펀드를 위험성 낮은 우량 펀드로 둔갑시켜 공모펀드처럼 판 대가였다. 라임펀드를 팔지 않은 은행과 증권사를 찾기 어려웠다. 이번 CFD 피해자는 살인적인 손실에 노출됐지만 하소연할 곳이 없다. 제도권에서 이뤄진 폰지 사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엔 삼천리 서울가스 세방 등과 같은 자산주만 집중 매입했다. CFD로는 코스닥 한계기업을 살 수 없기 때문에 대주주 지분이 높고 거래가 적은 소외주를 타깃으로 했다. 2020년 선광을 시작으로 포트폴리오를 늘렸다. 이들 종목의 특징은 한 번도 출렁이지 않고 우상향했다는 점이다. 일반 주가조작 세력처럼 바이오, 리튬 등 특정 테마를 노려 보도자료를 낼 필요도 없었다. 이들은 CFD로 수익률을 극대화하면서 알음알음 회원을 늘려나갔고, 수익의 50%를 골프장, 갤러리 등을 통해 받아 챙겼다.
조진형 기자는 라임 사태 보도로 2020년 2월 제51회 한국기자상 경제보도부문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증권부 차장 겸 마켓인사이트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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