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라는 낙인이 찍힌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에 거래가 크게 줄어든 가운데 지금이 전셋집을 구할 기회라는 분석이 나온다. 보증기관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 기준이 까다로워지면서 오히려 보험을 들 수 있는 집이 안전하다는 인식이 커져서다. 게다가 공동주택 공시가격 하락으로 전셋값도 내려 실수요자에겐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는 조언이다.
3일 강서구 화곡동 현지 부동산 공인중개업소 등에 따르면 전세를 원하는 수요자들은 일대의 빌라 전세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화곡동 일대는 저렴한 빌라가 많아 사회초년생들은 물론 신혼부부들이 관심이 많았던 곳이지만 최근 전세사기 피의자들이 주 활동지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빌라 전세거래가 위축됐다. 다만 최근에 나온 정부의 대책으로 실수요자들의 안전망이 확보됐다는 평가다.
예를 들어 지난해 공시가격 1억원인 빌라는 전셋값이 1억5000만원을 넘지 않아야 보증보험 가입이 됐다. 하지만 올해는 같은 가격의 빌라를 들어가더라도 전셋값이 1억2600만원을 넘지 않으면 보험에 들 수 있다. 집을 구하는 실수요자 입장에선 더 낮은 가격에 전셋집을 구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화곡동 A 공인 중개 대표는 "사기에 대한 불안함에 세입자들이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전셋집만 찾는다"며 "집주인들은 세입자를 들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전셋값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격 기준을 맞춰야 하니 전셋값은 내리고 보험 가입도 가능해 실수요자들 입장에선 안정성이 더 커졌다"고 했다.
인근에 있는 또 다른 공인 중개 관계자는 "기존 가격에서는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전세 물건이 거의 없다. 가격을 낮춰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공인중개사들도 보험 가입이 되지 않는 물건은 수요자들에게 애초에 보여주지도 않는다"고 했다. 이어 "앞서 시행된 '집주인 미납국세 열람' 등 제도들도 실수요자들이 먼저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전과 비교하면 집을 구하는 환경이 많이 나아졌다"고 설명했다.
공시가격이 내리면서 전셋값은 더 낮아질 전망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 공동주택(아파트·연립·다세대) 공시가격은 지난해보다 18.6% 내렸다. 작년 전국 공동주택 가격 하락률 15.5%에 2020년 수준인 69%의 현실화율을 적용해서다. 서울은 작년보다 17.3% 내렸다.
현장에서도 전셋값이 눈에 띄게 낮아졌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엠펠리체에이동' 전용 28㎡는 지난 3월 1억8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맺었는데, 2년 전인 2021년 7월 맺어진 2억1400만원보다 3400만원(15.88%) 하락했다.
화곡동 B 공인 중개 관계자는 "공시가격이 하락하면서 보증보험에 가입하려면 그만큼 전셋값도 내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투룸 신축을 기준으로 했을 때 2년 전엔 3억원 수준에서 전세 계약이 맺어졌지만, 최근엔 2억원 수준으로 내렸다. 실수요자들 입장에선 가격 하락으로 부담이 덜해진 셈"이라고 귀띔했다.
빌라라고 불리지만 주택과 다른 '근린생활시설'을 피하라는 조언도 있다. 화곡동 D 공인 중개 관계자는 "근린생활시설은 강가 등 생활편의시설이라 취사, 난방 등이 안된다"며 "이를 개조해 빌라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런 빌라는 보증보험 가입이 안되는 만큼 꼼꼼히 확인하고 집을 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매매, 전세 등 인근 시세 파악은 물론 등기부등본상 권리 관계 확인하기, 전입신고 등도 살펴봐야 한다. 계약서를 쓸 때 특약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편 강서구 일대 임대차 시장 분위기는 여전히 부진한 상황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전날 기준 4월 서울 강서구에서 거래된 임대차 계약은 481건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1040건보다 559건(53.75%) 감소했다. 반토막 이상 줄어들었다.
화곡동에 있는 공인 중개 관계자는 "전세 사기 사건이 터진 이후에는 전세로 거래하려는 실수요자들이 거의 없었다"며 "그나마 당장 집을 옮겨야 하는 실수요자들은 대부분 월세를 찾거나 전세를 월세로 돌려달라고 집주인에게 요구했다"고 했다.
인근에 있는 또 다른 공인 중개 관계자는 "집을 구하러 오는 실수요자들 대부분은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본다"며 "전세 사기와 관련이 없는 집도 '사기와 연루된 것 아니냐'면서 물어온다. 거래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안전장치는 생겨나고 있지만 실수요자들의 심리적 불안감이 거래를 억누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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