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패션디자이너인 우영미의 브랜드가 연 매출 1000억원 시대를 목전에 뒀다. ‘하이패션’(디자이너 철학이 반영된 고급패션·오트쿠튀르)을 추구하는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국내 패션 역사상 기록적 수치다.
한국은 1인당 명품 소비 1위임에도, 정작 글로벌 무대에 내세울 수 있는 브랜드는 우영미 등 일부에 불과한 실정이다. “전세계에 한류가 불고 있는 지금이 ‘K명품’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패션업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쏠리드의 이 같은 매출은 국내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 중에선 압도적 수치다. 손정완 디자이너가 대표로 있는 패션기업 손정완이 315억원, 1세대 디자이너 남성복인 송지오인터내셔널이 210억원의 매출을 각각 올렸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브랜드 ‘구호’와 '준지(디자이너 정욱준)'도 수 백억원의 실적을 내고 있지만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디자이너 브랜드는 소매·도매가 섞여 내부 매출 기준이 제각각 인데다 대부분 매출 100억원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법인 공시 기준으로 1000억원을 육박했다는 것은 국내 패션사에서 의미가 크다”고 했다.
우영미 디자이너는 패션계에선 ‘마스터(거장)’로 불린다. 2002년 한국 패션이 해외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했던 시절 ‘패션 본고장’ 파리에 진출해 끈질긴 집념으로 일가를 이뤘기 때문이다.
그는 2011년에는 한국 최초로 파리의상조합 정회원 자격을 취득했다. 파리 패션위크에 공식 초청되는 파리의상조합 정회원은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등을 포함해 전세계 브랜드 중 100곳이 되지 않는다.
우영미, 준지 등 대중적으로 알려진 디자이너 브랜드 외에도 신진 디자이너들도 해외에서 약진하고 있다. 한현민 디자이너의 ‘뮌(MUNN)’은 2019년에 런던 패션위크에서 사라 마이노 밀라노 패션위크 디자이너에게 스카웃된 것을 시작으로 2021년부터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단독쇼를 개최하고 있다. BTS가 월드 투어 콘서트를 위해 뮌 브랜드에서 직접 의상을 구입한 것이 알려지며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디자이너브랜드 전문 플랫폼인 하고엘앤에프에 입점한 ‘마뗑킴’은 지난해 연 매출 500억원을 달성했다. 소셜미디어 마케팅을 활용해 2년만에 매출을 열 배로 키웠다.
이 같이 디자이너들이 각개약진하고 있지만, 아직 국내 하이패션 산업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제2의 우영미’를 탄생시키기 위해선 명품의 역사를 만들 수 있는 장기적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정민 트렌드랩506 대표는 “패션을 사치산업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부가가치가 높은 수출 전략 산업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선진국처럼 정부 주도의 패션교육기관을 만들고 디자인 저변의 산업을 종합적으로 키울 수 있는 전문가 육성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명품 소비 시장 규모는 168억달러(약 22조원)로 전년 대비 24% 성장했다. 인구 수로 환산하면 1인당 325달러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중국과 미국의 1인당 지출액인 55달러, 280달러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한편, 지난해 섬유패션산업 수출액은 123억달러(16조4500억원)로 전년128억달러보다 5억달러 가량 감소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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