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제가 판소리를 통해 오랜 시간 학습하고 발견하는 좋은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차근차근 여러분과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이 칼럼이 제가 판소리를 연습하고, 공연하고, 창작해 온 34년간의 시간들을 중심으로 여러분과 판소리를 비롯한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재미난 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용기를 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우연히 판소리 스승님을 만나게 돼 판소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88올림픽을 치른 후 한국이 여느 때보다 떠들썩하던 시절이자, 모두가 TV를 통해 동일한 드라마와 대중가요를 향유하며 대중문화가 꽃피기 시작한 시절이었지요. 한국이 바야흐로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고 그로 인해 대중·공연 문화 등 전반적인 문화가 다방면으로 확장되고 실험을 시작하던 그때, 꼬마 이자람은 판소리를 만나 한국의 전통음악을 교육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은 눈앞에 피자와 콜라를 놓고 춘향가 가사를 외우는 일이었고, 교복을 입고 가야금을 든 채 강남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당산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는 긴 하굣길에서 옆을 지나는 타인들에게 “쟤 기생학교 다니나 봐”와 같은 말을 듣는 일이었습니다. (중략)
이 칼럼을 쓰는 이유는 당신의 삶에 없어도 상관없을 것 같은 이 판소리를, 대체 어떤 사람들이 만들었고 어떤 노력을 기울여 기술을 습득해 인간문화재까지 되었는지 등에 대한 제가 주워들은 재미난 이야기들을, 여러분과 과자처럼 나눠 먹고 싶어서입니다. 위대한 문화재들로부터 저와 같은 평범한 열한 살짜리 꼬맹이가 어떻게 교육을 받으며 21세기-바야흐로 PC통신을 지나 인터넷의 확산, 휴대폰 속 넘쳐흐르는 정보와 이미지의 세상 속에서-를 가로질러 함께 이 사회에 속해 살아가는지 들려주고 싶어서입니다. 앞으로 자유롭게 풀 이야기보따리에 추임새 대신 애정 어린 관심을, 티켓 구매 대신 칼럼을 읽어주시는 5분의 여유를 부탁드립니다. 참,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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