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 주식시장 최대 관심사 중 하나로 '자이글'을 꼽았다.인기 업종을 추가해 주가를 띄워 놓고, 정작 부실한 재무관리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자이글은 가정용 전기 그릴을 만들던 회사다. 홈쇼핑을 통해 삼겹살이 각종 고기를 굽는 모습이 자주 방송됐다. 그런 회사가 2차전지 사업에 뛰어든다는 소식에 주가가 올해(1월 2일~5월 4일)에만 227% 뛰면서 주식 시장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아무리 요새 '핫'한 게 2차전지라고 하지만, 2년 연속 적자를 지속하면서 자금 사정이 녹록치 않은 만큼 최근의 급등에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자이글은 지난 4일 1만7790원에 거래를 마쳤다. 연초까지만 해도 4000원대를 맴돌던 주가는 단 4개월 만에 5배 넘게 급등해 2만원대로 올라섰지만, 직전거래일 18%가량 급락해 1만원 후반대로 떨어졌다.
주가 급등은 작년 말 씨엠파트너의 전지사업 부문을 인수한다고 밝히면서 사실상 시작됐다. 자이글은 지난해 12월 28일 2차전지 제조시설 및 연구설비 구축을 위해 씨엠파트너의 토지, 건물, 2차전지 관련 제조설비 등의 자산을 74억원에 양수했다고 공시했다. 이를 위해 그다음 날인 29일 63억원 규모 단기차입금 증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다만 공시 직후 주가 변동성이 컸던 건 아니다. 주가가 가파르게 치솟기 시작한 건 올 3월부터다. 자이글은 지난 3월 한 달(3월 2일~31일) 사이에만 무려 467.22% 뛰었다. 거래소는 단기간 급격한 상승에 조회공시를 요구했고, 자이글은 지난 3월 30일 '미국 버지니아주에 2차전지 합작법인(JV) 설립 및 투자와 관련해 세부 사항을 협의 중'이란 답변을 내놨다. 주가는 이후 더 무섭게 치솟았다. 지난달 4일 장중 3만8900원까지 오르며 4만원에 육박했다.
시장 안팎에서는 비정상적인 주가 움직임에 공시 내용의 실체를 되짚어봐야 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단순히 '협의 중'이란 건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는 얘기지만, '2차전지'와 엮이면서 거대 호재로 인식됐고, 이는 주가 급등으로 이어졌다. 더군다나 기존에 영위하던 사업 분야는 물론이고 창업멤버의 이력을 보면 이 회사와 2차전지 사업과의 연관성을 좀처럼 찾기 어렵다.
사업보고서를 보면 창립멤버인 이진희 대표, 안선영·이승현 사내이사 모두 줄곧 식품·외식업계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이 대표는 1993년 국립부산수산대학교 미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취영루 생산본부장을 거쳐 2005년 부민푸드 대표이사가 됐다. 이후 2009년부터 현재까지 자이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안 사내이사와 이 사내이사는 2008년까지 각각 부민푸드 팀장과 부장으로 근무하다 이 대표를 도와 자이글을 세웠다.
아직 2차전지 관련 뚜렷한 성과를 내놓은 게 아닌 만큼 2차전지 테마에 올라타 주가를 띄우겠단 심산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자이글 관계자는 "(씨엠파트너 전지사업부 인수로) 리튬인산철(LFP)배터리와 LFP배터리 양극재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동시에 개발 완료하고, 양산까지 가능한 기술을 확보했다"며 "우리의 셀은 이미 공인 시험성적서 기관의 검증을 받았으며, 각종 자체 실험을 통과해 전기 오토바이와 태양광 가로등 등에 적용돼 왔다"고 설명했다.
자이글은 배터리 연구소도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관계자는 "연구시설과 설비를 갖춘 서울 홍릉동 지식산업센터 내 배터리 연구센터를 인수했다"며 "씨엠파트너의 자체 배터리 연구소로서 양극활 물질에 대한 연구개발이 이뤄진 곳"이라고 했다.
이러한 가운데 사모펀드가 보유 물량 일부를 털었다는 점도 의심을 키우는 대목이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5% 이상 주주였던 케이아이비프라이빗에쿼티(KIB-PE)는 올 1월 16일 1만2000주 장외매도를 시작으로 이달 3일까지 총 15번에 걸쳐 13만9655주를 처분했다. KIB-PE는 자이글이 상한가를 기록한 지난 3월 24일과 27일엔 각각 3만주씩 장내에서 팔았고, 지난 3일엔 8만1983주를 장내매도해 약 33억원을 현금화했다. 현재 KIB-PE의 지분율은 3.99%로 줄어든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인 투자자의 피해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주가가 한창 폭등하던 지난 3월 한 달간 순매수에 나선 건 오직 개인들이었다. 이 기간 개인은 38억5500만원 사들인 반면,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15억5500만원, 4억3400만원어치를 팔아치웠다.
금융투자업계 A관계자는 "과거 제약·바이오 사례를 미뤄 보면 호재 공시를 내면서 주가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렇게 별다른 이유 없이 오른 주가는 회귀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개인 투자자 지옥으로 전락할 여지가 충분히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재무상태는 괜찮을까. 회사는 2020년 흑자전환한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2018년부터 적자를 지속하고 있다. 영업현금흐름도 2021년부터 2년 연속 마이너스(-)다. 2021년 -46억원, 2022년 -8억원을 기록했다. 작년 말 기준 현금성자산은 35억4600만원으로 전년 72억5000만원에서 반토막 났다. 유동비율도 악화해 64.9%를 가리켰다. 유동비율이 100% 아래라는 건 1년 안에 갚아야 할 빚보다 현금화 가능한 자산이 적다는 얘기다.
회사는 2015~2016년 전기 그릴로 매출 1000억원에 100억원대 영업이익을 내기도 했지만, 실적은 점차 감소세를 그렸다. 본 사업의 수명이 다한 탓이다. 그렇게 2018년부터 기능성 뷰티, 헬스케어, 의료기기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혔지만, 매출 성과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다 보니 회사는 2018년 5월 140억원 규모의 사모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이후로도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다 썼다. 2021년 6월엔 전환사채 만기 전 사채 취득 목적으로 100억원을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렸다. 지난해 12월엔 2차전지 사업을 위해 63억원을 추가로 차입했다. 현재 단기차입금 총액은 163억원 수준이다.
지난달 4일엔 300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신주배정 대상자 2차전지 투자전문 펀드인 엑스티 이에스에스 펀드(XT ESS FUND)다. 회사는 300억원을 조달해 운영자금으로 237억원, 채무상환 자금으로 63억원을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자금 조달 목적이 운영자금이나 채무상환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회사의 재무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시인한 셈이다.
2차전지 사업 추진 관련 추가 자금 조달 계획에 대해 회사 관계자는 "앞으로 회사가 추진할 규모가 아주 큰 만큼 미국 측 투자 파트너사를 통해 조달할 계획"이라며 "사업 진행에 필요한 자금은 단계별로 펀딩을 통해 해결하는 구조로 진행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자이글이 추가 자금 부담을 가지고 가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한국 자이글은 미국 자회사 공장 설립에 필요한 엔지니어링 컨설팅 등을 통한 매출 발생도 예상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금융투자업계 B관계자는 "재무제표만 보면 쓰러져 가는 회사인데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느낌이 든다"고 평가했다. 이어 "회사가 부채나 자본 상황이 안 좋아질 때 보통 자금조달 방안으로 유상증자를 선택하곤 하는데 막말로 이번 300억원 정도면 은행 차입금도 아니고 회사 입장에서 날아가도 되는 돈 아니냐"라며 "투자자와 주고받을 게 있는 관계가 있는 진정한 투자자 아닐 수 있는 만큼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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