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1965년에 만들어진 ‘무어의 법칙(Moore's Law)’. 반도체 칩의 집적도가 24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이 법칙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는 평가입니다. 범용 반도체의 성능이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발전하는 시대는 끝났고, 초거대 AI시대에 접어들면서 기능에 대한 요구는 더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혁신의 모멘텀이 기존 방식으론 더 이상 생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새로운 질서를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반도체 디자인 플랫폼의 선두주자로 반도체 밸류체인의 혁신을 준비하는 세미파이브의 조명현 대표를 한경 긱스(Geeks)가 만났습니다.
“더 많은 회사들이 자기만의 반도체(커스텀 반도체)를 직접 만들려고 할 겁니다. 하지만 모든 회사가 수십 명의 반도체 엔지니어를 고용할 필요는 없죠. 반도체 핵심 IP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플랫폼이 지원해 설계를 효율화하면 어떨까요. 차별화된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회사들은 기존만큼 큰 투자를 하지 않아도 직접 반도체를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조명현 세미파이브 대표는 한경 긱스와의 인터뷰에서 “반도체 디자인 플랫폼을 이용하면 설계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50% 가량 감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9년 조 대표가 세운 반도체 설계 솔루션 기업 세미파이브는 여러 회사들이 시스템 반도체를 효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최근 675억원 규모의 시리즈B 후속투자를 마무리해 설립 4년만에 2400억원이 넘는 투자금 유치에 성공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국내 디자인솔루션 파트너(DSP) 4곳 중 하나다.
반도체를 개발하려면 수백억원의 비용과 1~2년의 개발 기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서로 다른 반도체라고 하더라도 전원 연결 구조 등 큰 토대는 동일하다. 세미파이브는 각 회사가 처음부터 반도체의 전 영역을 설계할 필요 없이 공통 부분을 재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세미파이브의 설계 플랫폼을 이용한 14나노미터 AI반도체의 경우 기존 설계방식보다 비용은 63%, 기간은 48% 개선됐다. 리벨리온, 퓨리오사AI 등 주요 AI반도체 설계 스타트업들과 협업하고 있다.
조 대표는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MIT에서 반도체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근무하며 전 세계 반도체 기업들의 전략을 들여다봤다. 기존 반도체 시장의 성장 동력이 한계에 부딪히고 새로운 모멘텀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그 때 판단했다. 다음은 조 대표와의 일문일답. <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
Q. 어떻게 세미파이브를 창업하게 됐습니까.
A. 가장 혁신적이라고 여겨지는 글로벌 기업들은 자체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큰 회사들은 직접 반도체를 개발할 자원과 역량이 있죠. 앞으로는 더 다양한 회사들이 전용 반도체를 만들려고 할 거예요. 하지만 모든 회사가 반도체의 모든 부분을 설계할 역량이 있는 건 아닙니다. 또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이 반도체 개발 수요를 플랫폼으로 해결할 수 있는 회사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Q. 반도체 개발 수요를 플랫폼을 통해 해결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A. 예를 들어 오디오 회사가 직접 칩을 만든다면 이 칩을 만들어서 차별화하고 싶은 부분은 음성이나 음악 같은 부분이고, 실제로 회사가 직접 설계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받는 식의 반도체 설계 기반 기술들은 각 회사가 직접 한다고 해서 차별화되지도 않고, 자신들의 비즈니스와는 아무 상관없는 인력까지 확보해야 합니다. 1970년대를 생각해보세요. 그 때는 팹리스나 파운드리가 없었고 반도체 제품을 팔고 싶은 각각의 회사들이 기술을 개발하고 팹을 지었죠. 그런데 지금 반도체 팔고 싶으면 팹부터 지으라는 건 말이 안되잖아요. 그것과 같습니다. 인공지능을 사용한 새로운 칩을 만들고 싶은 기업 모두가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 50명씩 뽑아야할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반도체 설계에 필요한 투자와 시간을 줄여주는 설계 플랫폼을 이용하면 됩니다.
Q.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요.
A. 설계에 필요한 기술 요소들을 재사용하고 자동화하는 게 핵심입니다. 다른 용도의 칩이라도 겹치는 부분들이 있거든요. 비디오 게임을 예로 들어 보자면 게임업체들이 3D그래픽이나 사운드를 바닥에서부터 모두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언리얼이나 유니티 같은 게임엔진 회사가 그래픽 처리와 사용자 입력을 처리해줍니다. 이 엔진을 이용해서 누구는 스포츠 게임을 만들고 누군 액션 게임을 만든다고 했을 때, 이 두 게임은 서로 다르지만 같은 코드를 재사용하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기술 요소를 재사용해 얻어지는 효율성의 개선이 있습니다. 이런 개념을 반도체 설계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반도체에서 공통적으로 쓸 수 있는 부분을 개발하고, 이 재사용될 수 있는 부분들이 각각의 회사가 원하는 조합으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결합합니다. 이 과정이 자동으로 이뤄지도록 해 결국에는 훨씬 더 칩을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입니다. 세미파이브는 설계 재사용과 자동화를 활용함으로써 개발 비용과 개발 기간을 기존 설계의 절반 정도 단축하고 있습니다.
Q. 반도체를 직접 만들고 싶어하는 회사가 많습니까.
A. 세미파이브를 처음 창업을 했을 때만 해도 고성능 반도체를 직접 개발하는 업체의 수가 적었습니다. 굉장히 극소수의 대기업만이 하이스피드 인터페이스를 사용해서 칩을 만들고 있었는데 몇년 사이에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자체 칩을 만들고자 하는 업체의 숫자가 굉장히 많이 늘어났습니다. 큰 클라우드 업체라든지 검색 업체들은 당연히 반도체 개발을 이미 하고 있고 그 영역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어요. 예를 들어서 헤드셋 오디오를 만드는 회사도 지금까지는 반도체를 사서 제품을 만들었지만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차별화된 기능과 성능을 구현하기 위해서 직접 반도체를 만들기 시작하는 식입니다.
Q. 변화된 이유는 뭔가요.
A. 첫 번째는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의 특성상 수요 기술이 다양해지고 새롭게 진화를 해 나가잖아요. 각 영역별로 다양한 종류가 쓰이게 되면서 수요 기술 자체가 분화되고 다변화되는 부분이 하나가 있고요. 두 번째는 무어의 법칙이 경제적으로 굉장히 슬로우 다운됐죠. 유의미한 차이를 내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비용을 투자해야 하게 됐어요. 그냥 2년 기다리기만 한다고 같은 가격에 더 두 배 좋은 칩이 나오지를 않으니까, 그렇다면 예전에 만들었던 제품보다 더 월등하게 좋은 제품을 만들면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되고, 그 질문의 필연적인 답으로서 '그럼 내 케이스에 최적화된 칩을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거죠.
Q. 반도체 생태계도 변화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A. 과거 '반도체 디자인하우스'라는 비즈니스 모델이 '반도체 디자인플랫폼'이라는 모델로 진화를 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 디자인하우스들은 고객이 반도체를 설계하면 그 설계에 맞춰 반도체로 개발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각 프로젝트마다 모든 일을 새로 했습니다. 굉장히 고객 의존적이었고, 또 기존에 반도체를 잘 만들어온 고객들만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이었죠. 전 이 디자인하우스라는 모델이 이제는 과거의 유산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한적인 역할을 하는 디자인하우스와 붙어서 칩을 만들 수 있는 고객은 이제 많지 않고요. 이와 달리 디자인 플랫폼이란 개념은 칩이 만들어질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놓으면 고객들이 찾아와서 칩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비즈니스 모델인 거죠.
Q. 반도체 설계의 문턱을 낮출 수 있겠네요.
A. TSMC가 70년대 말에 파운드리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처음으로 가지고 나와서 반도체 밸류체인에서 제조 영역을 플랫폼화 시켰다면 저희는 설계라는 영역을 플랫폼화해 차별화된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고객이라면 누구든지 팹도 지을 필요 없고 설계에 대해서도 큰 투자를 할 필요 없이 손쉽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Q. 매출은 어떤 방식으로 나오나요.
A. 반도체가 만들어질 때 발생하는 개발 매출이 있고 또 만들어진 반도체가 사용될 때 발생하는 제품 매출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객사와 진정한 파트너십 관계를 가져간다고 생각을 하는데 칩을 만들 때도 같이 협력하고 이제 이 칩이 나중에 사용이 될 때까지 이어집니다. 각 과제별로 적게는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백억에 이르는 규모의 과제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Q. 앞으로 목표는.
A. 수십 종류의 다양한 인공지능 반도체가 만들어진다면 그 반도체가 저희 세이파이브를 통해서 설계되고 공급되도록 하는 게 저희의 목표예요. 전용 반도체가 필요한 많은 회사들이 세미파이브로 찾아오고, 그래서 반도체 산업을 대표하는 새로운 글로벌 기업으로서 성장하고자 합니다. 설계의 재사용성과 자동화 수준을 높이기 위한 그런 R&D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고요. 지금은 2배 정도의 효율성을 기록했다면 앞으로는 4배에서 5배까지도 설계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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