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 운전 실력이면 ‘왕초보 기사’ 수준은 넘어섰는데요”
지난달 24일 서울 강변북로. 하얀색 대형 SUV가 일산 방향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지난 4월 국내 공식 출시한 모델X입니다. 이번에 상륙한 모델은 지난 2021년 신형에 가깝게 대폭 성능이 개선된 버전입니다. 북미 시장에 그해 6월 모델S와 함께 먼저 판매했습니다.
[테슬람이 간다]는 국내 언론 최초로 한국에서 ‘신형’ 모델X 시승을 이틀간 일정으로 진행했습니다(4월 29일 자 「모델X 내러티브 시승기 (1) 꿈의 아빠차」 참조). 시승은 최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문 연 테슬라 스토어에서 시작했습니다. 강변북로를 따라 일산을 거쳐 파주까지 총 130㎞를 달렸습니다.
기어를 ‘D’로 놓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습니다. 전기차답게 부드럽게 출발합니다. 전기차를 몇 차례 시승하면서 느낀 점은 주행 질감이 내연기관차와 비교해 크게 이질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처음 전기차를 탔을 때 불편했던 가속페달의 회생제동(가속페달을 발에서 떼면 제동) 기능도 익숙해지니 오히려 편하게 느껴집니다. 속도를 낮추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는 일이 줄어서입니다. 자연스레 브레이크 패드 등의 소모품 마모도 내연기관차보다 덜합니다. 테슬라 어드바이저에 따르면 기존의 테슬라 차량은 회생제동 단계를 조절할 수 있었지만 2023년형부턴 그 기능이 빠졌습니다.
운전석의 승차감은 고급차답게 모델3·Y보다 안정적입니다. 하지만 고급 차 브랜드인 제네시스나 메르세데스벤츠에 비할 바는 못 됩니다. 승차감은 오랫동안 자동차를 만들어왔던 내연기관차 브랜드들이 확실히 앞서있습니다. 특히 시승 내내 2열 좌석에 앉은 촬영 어시스트는 “차량 제동 시 모노레일을 탄 듯한 어색한 느낌을 받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고속주행 시 실내 유입되는 풍절음도 작지 않습니다. 1억4000만원에 달하는 가격을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입니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테슬라는 안락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브랜드입니다.
모델X엔 에어 서스펜션이 장착돼 서스펜션 높이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운전자의 취향에 따라 부드럽거나 단단한 승차감 선택이 가능합니다.
FSD는 고속화도로에서 주행 보조 기능인 △내비게이트 온 오토파일럿과 △자동차선 변경 △자동 주차 △차량호출 등의 기능을 쓸 수 있습니다. 교통신호등 감지와 도심 자율주행은 아직 북미에서만 서비스됩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선 FSD가 ‘반쪽 옵션’이란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운전대 오른쪽 스크롤을 누르면 ‘띵’ 소리와 함께 오토파일럿이 활성화됩니다. 스크롤을 위아래로 조작하면 최고 속도를 설정할 수 있습니다. 디스플레이로 앞 차량과의 간격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시속 80㎞로 맞추고 가속페달에서 살며시 발을 떼봅니다. 운전대엔 손만 슬쩍 걸쳐봅니다.
사람 대신 운전을 시작한 모델X는 능숙하게(?) 도로를 달립니다. 막히는 길에선 속도를 줄이고 빈 도로에선 제한 속도만큼 올렸습니다. 이 과정이 매우 부드럽습니다. 좌우 깜빡이를 켜면 자동차선 변경이 가능합니다. 오토파일럿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차선 변경을 해냅니다. 몇 번 해보면 절로 감탄사가 나옵니다. “허, 참~ 왕초보 운전사보다 낫네요”
기자는 지난해 7월 모델3와 모델Y를 시승하면서 같은 도로에서 테슬라 자율주행 기능을 체험한 바 있습니다. 9개월 만에 다시 접한 오토파일럿은 당시보다 훨씬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졌습니다. 현대차의 전기차 아이오닉5에 탑재된 반자율주행 기술인 ‘내비게이션 기반 스마트크루즈컨트롤(NSCC)’은 아직 이 수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모델X는 정체된 출근길에도 알아서 척척 운전합니다. 약 1시간20분의 주행 동안 기자는 단 한 번 개입했습니다. 차량 흐름이 잠시 원활해지자 차량이 알아서 속도를 높였고 살짝 겁이 나서 브레이크를 밟은 게 전부입니다. 테슬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람이 운전할 일이 없다’는 뉘앙스의 유머로 올라오는 ‘고양이 운전’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운전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자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름다운 한강과 63빌딩이 모델X의 커다란 앞 유리에 막힘 없이 보였습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공언대로 자율주행이 이뤄진다면 일상의 많은 부분이 달라지겠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현재의 오토파일럿은 물론 100% 완벽하지 않습니다. 차량이 빽빽한 구간에선 끼어들기를 못 하고 ‘초보 운전’처럼 쩔쩔맵니다. 능숙한 운전자라면 충분히 끼어들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은 교통사고 위험성이 높은 만큼 보수적으로 세팅한 것으로 보입니다.
운전대에 손을 오랫동안 떼면 경고음이 울립니다. 이를 계속 무시하면 자동으로 오토파일럿 기능이 꺼집니다. 사고 위험성 때문입니다. 미국에선 오토파일럿 출시 후 9년간 사망 사고를 포함해 차량 내 음주 등으로 사회적 논란이 적지 않았습니다. FSD와 오토파일럿은 엄연히 자율주행 레벨2 수준의 ‘주행 보조 기능’입니다.
“어, 어~!”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내연기관차에서 급가속하면 느껴지는 기어 변경 딜레이나 터보랙(터보엔진 차량 가속 시 딜레이)도 없습니다. 전기차니까요. 모델X의 고성능 트림인 ‘플래드’의 제로백은 2.6초입니다. 공식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빠른 SUV입니다.
이 무거운 대형 SUV가 어떻게 내연기관 슈퍼카를 능가하는 속도를 낼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국내 출시된 주요 슈퍼카의 제로백은 △포르쉐 911 터보S 2.7초 △맥라렌 600LT 스파이더 2.9초 △페라리 296 GTB 2.9초 △람보르기니 우라칸 3.2초입니다.
머스크는 테슬라 설립 초기부터 스포츠카처럼 ‘멋지고 빠른’ 전기차를 원했습니다. 공동 창업자였던 마틴 에버하드와 JB 스트라우벨도 마찬가지 생각이었습니다. 이들은 테슬라가 골프 카트 같은 ‘따분한 시티카’가 되어선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테슬라는 2014년 모델S에 ‘미친(insane)’ 가속 모드, 2015년엔 ‘터무니없는(ludicrous)’ 가속 모드를 장착합니다. 루디크러스 모드는 제로백이 단 2.8초에 불과했습니다. 이를 체험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라운 웃음이 터졌고 이는 유튜브 영상으로 소개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권종원 『일론 머스크와 지속가능한 인류의 미래』).
포르쉐 박스터는 빠르고 좋은 차입니다. 하지만 세상엔 ‘넘을 수 없는 벽’이란 게 있는 법입니다. 내연기관차는 애초에 공도에서 전기차의 상대가 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 차는 ‘그냥 전기차’가 아닙니다. 머스크와 테슬라 창업자들은 ‘달리기 위한 차’를 만들길 원했습니다. 그 정신은 7인승의 거대한 이 기함 SUV에도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단 3초 만에 ‘참교육’ 시전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되겠지요. 아니라는 뜻으로 속도를 살짝 줄여봅니다. “붕~” 박스터는 배기음과 함께 저 멀리 달려 나갑니다. 그제야 긴장이 풀렸습니다. 가족들이 기다립니다. 아빠에겐 느긋한 안전 운전이 제격입니다.
▶‘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어갈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트위터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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