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 1·3호 터널을 개인 승용차로 지나치려면 통행료를 내야 한다. 매번 2000원이다. 서울시의 통행료 징수는 27년째다. 외국에서도 도심이나 특정 혼잡 지역에서 통행료를 받는 일은 흔하다. 고속도로 등의 통행료와는 성격이 달라 혼잡 부담금 내지는 편의 수익자에 대한 공사비 부과 성격이 강하다. 서울시가 1996년 11월부터 받아온 ‘혼잡’ 통행료를 없앨지를 놓고 고민 중이다. 지난 3월부터 두 달 정도 통행료 징수 면제 실험을 했는데, 이 자료를 근거로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통행료를 없애면 이용자 부담이 없어져 통행자에겐 도움이 되겠지만 도심 차량 속도가 떨어진다. 저탄소 노력과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반면 그다지 실속도 실리도 없는 부과인 만큼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도심의 터널 통행료, 철폐하는 게 맞을까.
서울 도로에는 통행료를 부과하는 곳이 없다. 남산 터널도 그런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다. 통행료 징수 효과도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과연 차량 통행량이 줄어들었고, 도심 혼잡이 개선됐느냐를 측정해보자는 것이다. 통행료 도입 직후에는 터널 이용 차량이 줄어들기는 했다. 하지만 일시적 현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담금 2000원의 가치가 떨어졌고, 승용차는 늘어나면서 터널 통행량은 증가해왔다. 2000원 부담에도 터널을 지나겠다는 차량은 여전했고, 아니면 다른 도로로 우회하더라도 사대문 안 도심으로의 차량 진입은 오히려 늘어났다. 저공해 차량, 경차 등 통행료 면제 대상이 늘어난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 그 나름대로 면제 이유는 있지만 통행량 조절이라는 제도 도입 취지에 맞춰 볼 때 면제 남발은 합리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공휴일·주말의 면제도 같은 맥락에서 타당성을 살필 필요가 있다. 이래저래 요금 면제가 늘어나면서 통행료가 제 역할을 못 한다는 지적이 계속 나왔다.
혼잡 방지나 완화를 위한 통행료 부과라며 도심으로의 진입뿐만 아니라, 도심에서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차량에도 돈을 거두는 것 역시 비합리적이다. 서울시는 양방향으로 요금을 받지만 뉴욕 맨해튼 같은 경우 도심 진입에만 징수하지 않나. 서울시 예산 규모에 비하면 징수 요금이 시 재정에 도움도 안 된다.
도심 통행 속도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통행료 부담 시 평균 시속 18.2㎞이던 도심(종로·을지로·퇴계로·세종대로·대학로) 차량 흐름 속도가 강남 방향 면제 기간엔 17.9㎞(1.6% 하락), 양방향 면제 기간엔 17.4㎞(4.4% 하락)가 됐다. 터널 주변의 직접 영향권에 드는 구간은 도심에서 나가는 방향 면제 때 26.6㎞(4.3% 하락), 양방향 면제 때는 25.0㎞(10% 하락)로 더 많이 느려졌다. 요즘 물가로 볼 때 한 번 통행에 2000원이 큰 부담이 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혼잡통행료 효과’는 분명히 있다. 도심 혼잡 완화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할 판에 폐지하는 것은 거꾸로 가는 행정이다.
이런 효과를 보면, 오히려 오랜 기간 2000원이었던 통행료를 더 인상해야 한다. 자가용 승용차 이용자가 피부로 느끼도록 가급적 큰 폭으로 올릴 필요가 있다. 자가용 승용차로 혼잡한 도심에 진입하는 사람이 누리는 편리에 맞춰 부담금을 더 내는 게 합리적이다. 대기오염 유발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도심 공기 질 개선에 비용을 더 부담하는 것이 공정하다. 탄소배출 감소를 위해 전 세계가 노력하고, 한국 정부도 ‘무리한 목표’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저감 대책을 세우고 시행하려는 상황이다. 통행료가 부담된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좋다. 서울만큼 대중교통이 잘된 곳이 또 어디 있나. 평일 하루에 6000여만원, 150억원가량인 혼잡 통행료를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쪽에 합리적으로 잘 쓰는 것은 그것대로 과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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