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금융당국이 대형은행에 자금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지역은행의 잇단 파산으로 예금보험의 자금 여력이 고갈되자 대형은행의 보험료를 늘려 메우겠다는 계획이다.
4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예금보험기금(DIF)을 확충하기 위한 ‘특별평가 수수료’ 부과안을 다음주 중 발표할 계획이다.
대형은행들이 주 타깃이다. 블룸버그는 “FDIC가 대차대조표 규모와 예금자 수에 비례해 수수료를 부과할 계획”이라며 “대형은행들에 비용을 주로 부담시키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산 500억달러 미만의 소규모 은행들은 부과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수수료를 2년에 걸쳐 나눠 낼 수 있다.
DIF는 통상 보험에 가입한 은행들이 분기마다 내는 수수료로 운용된다. 그러나 FDIC가 지난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의 예금을 전액 보장하고, 퍼스트리퍼블릭은행 파산 손실도 일부 부담하며 자금이 밑바닥을 드러냈다.
4일 뉴욕증시에서 지역은행 주가는 지난 2일에 이어 급락했다. 파산의 다음 타자로 지목된 지역은행들이 매각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온 여파다. 팩웨스트 주가는 50.6%, 웨스턴 얼라이언스은행 주가는 38.5% 폭락했다.
로이터는 이날 미 연방 및 주 당국이 은행주 급락 사태에 ‘시장조작’이 있었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펀더멘털(기초체력)이 튼튼한 은행들에도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 투자자들이 대거 몰리자 위법 행위가 있는지 들여다보겠다는 취지다.
미 지역은행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3일 미 중앙은행(Fed)가 5월 기준금리를 또다시 올렸고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침체되고 있다. 지난 3월 먼저 무너진 SVB처럼 스타트업 대상 대출이 많거나, 무보험 예금 비중이 높은 은행들이 다음 타자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4일 팩웨스트는 전날 불거진 매각 검토설에 대해 “여러 전략적 옵션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USA투데이는 “미국 내 186개 은행은 무보험 예금자의 절반만 돈을 빼도 파산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월가에서는 은행위기를 끝내려면 FDIC의 예금 보장 한도(25만달러)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25만달러 이상 예금을 가진 사람들의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이 지속되는 한 지역은행들이 살아남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억만장자 헤지펀드 투자자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FDIC가 모든 예금을 보장하지 않으면 지역은행 전체가 위험에 처할 것”이라며 “악재가 들리면 주가가 폭락하고, 주가가 떨어지면 뱅크런이 진행되는 악순환이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예금보험기금을 어떻게 충당할지다. 000 트라이안펀드의 공동설립자 넬슨 펠츠는“25만 달러 이상 예금까지 보장해주는 대신 예금자들이 (추가) 보험료를 내는 등 방식으로 기금을 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은행 주가 폭락으로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인 공매도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펀더멘털이 튼튼한 은행들의 주가도 크게 떨어지고 있어서다. 공매도란 주가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을 남에게 빌려 판 뒤, 실제 주가가 떨어지면 다시 사들여 빌린 주식을 갚아 시세 차익을 얻는 투자 기법이다.
금융정보 분석업체 S3파트너스는 올 들어 헤지펀드들이 지역은행 주식에 대한 공매도로 70억달러(약 9조3000억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했다. 퍼스트리퍼블릭 은행 매각 이후에는 1~2일 이틀간 12억달러(약 1조6000억원)를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타임스(NYT)는 공매도 세력이 현재 팩웨스트 주식의 약 20%, 웨스턴얼라이언스 주식의 약 8%를 빌린 상태라고 보도했다.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은 매각 직전 이 비율이 36%에 달했다.
전미은행협회(ABA)는 4일 게리 겐슬러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에 은행주 공매도에 대해 조사할 것을 촉구했다. 반(反)행동주의 성향의 미 로펌 ‘와치텔 립튼 로젠 앤 캐츠’는 이날 “SEC가 15거래일 동안 공매도를 금지하는 등의 방식으로 규제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건전한 은행에 대한 공매도 압력을 포함해 시장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는 중”이라며 “SEC가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겐슬러 위원장은 ”투자자와 시장을 위협하는 모든 위법 행위를 식별해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유정/장서우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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