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우리들 미래는 쿵이지가 아닐까"…100년전 루쉰을 읽는 中 청년들

입력 2023-05-05 16:10   수정 2023-05-06 00:44

젊은 남자가 대낮부터 술집을 찾아온다. 최고급 맞춤 정장을 입었지만 너덜너덜해질 만큼 낡았다. 키가 훤칠하고 얼굴이 창백한 이 남자는 명문대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그러나 변변한 직업이 없다. 할 줄 아는 거라곤 글을 읽는 것뿐. 외상으로 낮술을 마시고, 도둑질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간다. 말끝마다 “군자는…” 하는 걸 보니 글깨나 읽은 사람인 것 같지만 지금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아Q정전>을 펴낸 루쉰(1881~1936)의 단편소설 ‘쿵이지’의 주인공 쿵이지는 청나라 말기의 몰락한 지식인이다. 100년도 훨씬 전에 등장한 쿵이지가 최근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나는 밝고 명랑한 쿵이지’라는 노래도 퍼지는 중이다.

중국 청년들이 다시 루쉰의 쿵이지를 집어 든 이유는 무엇일까. 학력 인플레이션과 취업난 때문이다. 청년들은 “열심히 공부한 끝에 쿵이지처럼 됐다”거나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면 나사를 조이는 노동자가 되어 행복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쓸데없이’ 열심히, 많이 공부했다고 한탄하는 것이다. 배운 것이 있어서 눈높이를 낮추기가 쉽지 않다 보니 ‘고학력’이 쿵이지의 낡아빠진 정장처럼 돼버렸다는 얘기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의 올해 3월 16~24세 청년 실업률은 19.6%에 달한다. 1~2월(18.1%), 작년 12월(16.7%)보다 높아졌다. 리창 중국 신임 총리는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취업은 민생의 근본으로, 취업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 방법은 경제성장에 기대는 것”이라고 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제 회복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하다.

중국 내에서는 쿵이지의 역주행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국 관영 방송인 중앙TV(CCTV) 인터넷판은 최근 ‘쿵이지 문학 배후의 초조함을 직시하라’는 평론을 싣고 이렇게 주장했다. “(소설 속) 쿵이지의 삶이 몰락한 건 공부를 해서가 아니라, 지식인의 허세를 버리지 못하고 노동으로 자신의 처지를 바꾸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뜻있는 청년들은 (쿵이지처럼) 낡은 정장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간 청년들에게 ‘일단 정장(고학력)부터 갖춰 입으라’고 부추겨 온 어른들의 책임도 생각해볼 문제다. 소설은 쿵이지가 행방불명 상태인 채 끝난다. 선술집에서 일하는 ‘나’가 기억하는 쿵이지의 마지막 모습은 다리가 부러진 채 흙바닥을 기어 와서 외상 술을 마시는 모습. 소설 결말은 이렇다. “나는 지금까지도 끝내 그를 보지 못했다. 아마도 쿵이지는 틀림없이 죽었을 것 같다.”

중국 청년들은 쿵이지의 최후에서 자기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쿵이지 최후의 모습은 중국 청년만 걱정하는 것일까.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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