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에 태어난 그는 올해 팔순을 맞는다. 내년 등단 60주년을 앞두고 있다. 반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글을 써오며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지낸 원로 시인이다.
그는 산수(傘壽)의 나이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 표제에 등장한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제목은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전쟁과 평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시에서 묘사한 그의 부엌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다섯 개의 칼’과 ‘쇠뭉치 방망이’ ‘날 선 가위’가 도사린다. 냉동고엔 얼린 고기가 쌓여 있고, 냄비에는 짐승의 뼈가 푹 고아진다. 서랍장엔 ‘한 주먹 털어 넣으면 영원한 안식으로 가는 약’이 날마다 눈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죽음의 공포가 널려 있는 부엌에서 매일 평화롭게 밥을 먹는다.” 시인은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부엌의 풍경에 주목했다.
시인의 삶도 전쟁 같았다. 셋째인 막내를 낳자마자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24년간 그의 곁을 지켰다. 역경 끝에 남은 것은 늙고 아픈 육체였다. 2005년 암 투병을 한 데 이어 교통사고로 병원 신세를 졌다. 작년에는 장기 일부를 떼 내는 수술도 했다. 지칠 때마다 그의 곁을 지킨 건 ‘시’였다. 그는 “수술대에 눕는 순간에도 ‘이걸 어떻게 시로 쓸까’ 고민했다”고 회상했다.
그가 시를 처음 만난 건 중학생 때라고 한다. 어느 날 아버지의 일기장을 들춰봤는데 매일같이 똑같은 문장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오늘도 나는 홀로 울었다’라고. 시인은 “어렸을 때 왜 아버지가 혼자인지, 왜 우는지 알고 싶었다”며 “사람의 마음을 보기 위해 문학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쉬지 않고 시를 쓴 지 60년이 지났다. 그는 “또 한 편의 시집을 낸다면 밝고 희망적인 내용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