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승리 후 ‘자유의 수호자’라고 자부하던 미국에선 강한 반발이 일었다. 진보주의자까지 반미소설이라고 질타했다. 이후 베트남전이 벌어지고, 무수한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선견지명을 지녔다’고 재평가받았다.
진지한 주제를 다루지만 따분하지 않다. 여기에 이 소설의 매력이 있다. 어떻게 보면 세 남녀의 삼각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우선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주인공 파울러가 있다. 영국 더 타임스 기자인 그는 전쟁을 취재하러 베트남에 왔다. 50대인 그는 지독히 현실주의적이고 냉소적이다. 딱히 삶에 의욕이 없고, 전장에서 축복처럼 죽기를 바란다.
어느 날 낯선 미국인이 한 명 나타난다. 막 학생티를 벗은 혈기 왕성한 젊은이로, 이름은 파일이다. 비밀리에 활동하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인 그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수립하고 미국의 이상을 온 세상에 전파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그리고 베트남 여성 후엉이 있다. 20세인 그는 유부남인 파울러의 애인이다. 파일은 후엉을 본 순간 사랑에 빠지고, 후엉에게 두 사람 중 한 명을 선택하라고 종용한다.
파울러는 파일에게 말한다. “그 방면에서 당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깨달아주기를 난 하느님께 빌겠어요. 아, 당신의 온갖 동기가 항상 그렇듯이 훌륭하다는 건 나도 알아요. 난 당신이 몇 가지나마 가끔 나쁜 목적에도 신경을 써서 인간성에 대한 이해의 폭을 좀 더 넓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건 말이죠. 파일, 당신 나라에도 똑같이 권하고 싶은 사항이랍니다.”
하지만 그 ‘조용한 미국인’은 깨닫지 못한다. 그에게는 평화보다 신념이 훨씬 중요하다. 그의 순진한 세계관은 일종의 근본주의여서, 세상에는 신념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는 믿는다.
작가는 전업작가로 나서기 전 기자로 일했다. 1951~1954년엔 더 타임스와 르 피가로의 전쟁 특파원으로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취재했다. 전쟁 르포를 읽는 듯 생생한 묘사가 일품이다. 베트남전을 몸소 경험하고 <하얀 전쟁>이란 소설을 쓰기도 했던 안정효 작가의 번역은 그런 장점을 잘 살렸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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