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기업 합병(merger)이 쉬워진다. 그동안 한국 인수합병(M&A) 시장에는 인수(acquisition)만 있고 합병은 없었다. 합병 기업의 ‘몸값’ 산정 방식을 법으로 정해놓은 영향이다. 정부는 이 같은 M&A 규제를 풀어 기업의 사업구조 재편과 신성장동력 확보를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거래 당사자가 합의를 통해 비계열사 간 합병가액을 결정할 수 있도록 연내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7일 발표했다. 금융위는 틀에 박힌 합병가액 산정 방식이 합병 거래를 위축시킨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현행 자본시장법에서 상장법인은 기준 시점의 시가를 기준으로 10~30%를 할인 또는 할증해 합병가액을 산정하고, 비상장법인은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1 대 1.5로 가중 평균해 정해야 한다.
합병은 인수와 달리 두 회사를 하나로 합치는 방식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기업은 기술 기반의 동종업체를 합병하면서 회사를 키웠다.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주로 합병을 사용한다. 2002년 일본의 항공사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본항공(JAL)과 일본에어시스템(JAS)은 합병을 택했다. 한국에서는 합병 목적으로 설립한 스팩(SPAC)을 제외하고는 사례를 찾기가 어렵다. 합병 당사자 간 이해관계를 반영하지 않은 획일화한 합병가액 산정 방법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는 합병가액을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허용한다. 한 M&A 전문가는 “합병가액 산정이 자유로워지면 성장성이 높은 벤처기업의 합병이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성장 활로를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무공개매수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시장에서 합병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이유로 꼽는다. 내년부터 상장사의 경영권을 인수할 때 50%+1주를 의무적으로 사야 하는 의무공개매수 제도 도입이 공식화된다. 한 M&A 관계자는 “의무공개제도가 시행되면 인수비용 증가로 다른 거래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며 “자금 없이 신주 발행만으로 회사를 살 수 있는 합병도 각광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합병이 증가하면 소액주주들이 대주주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합병은 100% 지분 거래가 동반되기 때문에 소액주주 역시 대주주와 동일하게 지분을 처분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합병가액 산정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제3자 외부평가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합병 관련 공시 항목도 구체화한다. 합병 추진의 경위나 타당성, 합병비율에 대한 적정성 등에 대한 이사회 의견 등을 주요사항 보고서나 증권신고에서 반영해 공시하기로 했다.
상장법인과 비상장법인 합병 시 우회상장 기준도 강화한다. 무자본 M&A 세력들이 합병가액을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그간 코스닥시장에서의 간이합병은 우회상장 심사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앞으로는 포함하기로 했다.
또 계열사 간 합병 규제 완화는 규제 완화 대상이 아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계열사 간 합병의 경우 대주주 위주 의사결정 등으로 인한 일반주주 피해 우려가 있다”며 “비계열사 간 합병가액 산정 방법 자율화에 따른 시장 영향 등을 봐가며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훈/선한결 기자 lee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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