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의회가 가상자산(암호화폐) 포괄 규제안 MiCA(Markets in Crypto Assets)를 승인했습니다. 이로써 유럽은 세계 최초로 가상자산 맞춤형 규제 법안을 도입한 주요 시장이 됐으며 MiCA는 오는 2024년 6월부터 점진적으로 시행될 예정입니다.
오늘은 MiCA 법안의 세부조항들을 살펴보고 현재 우리 국회에서 논의중인 가상자산 관련 법안들은 어떤 방식으로 시장에 적용될지 예상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가상자산 업계는 세계 최대 경제 블록 중 하나인 유럽 지역에서 MiCA를 통해 가상자산 산업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혁신을 지원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 의회는 MiCA 법안 머리말에서부터 "가상자산 산업의 잠재력 활성화와 지원을 위해 만들어졌다. 금융 리스크를 완화하면서 혁신 기술의 도입과 개발 촉진에 정책적 관심을 두고 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가상자산 산업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법적 환경을 조성해 혁신적인 기술을 보다 빠르게 받아들이고 싶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죠.
또한 유럽연합은 MiCA를 통해 가상자산을 '분산원장 기술(DLT) 또는 이와 유사한 기술을 활용하여 전자적 방식으로 이전 또는 저장된 가치 또는 권리'라고 정의했습니다. 분산원장 기술을 활용한다는 전제를 달면서 현재 인터넷에서 이용되는 전자화폐와의 차별점을 확실히 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국내에서는 가상자산을 어떻게 정의할까요. 지난달 25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위에서 상정된 '가상자산업법안(이용우의원 대표 발의)'에서는 가상자산을 '경제적 가치를 지닌 무형의 자산으로서 전자적으로 거래 또는 이전될 수 있는 전자적 증표'로 정의했습니다.
MiCA에서처럼 가상자산을 분산원장 기술을 기반으로 이전될 수 있는 권리라고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 모호함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단순히 해당 정의만 놓고 보자면 기존 국내 플랫폼들에서 사용되고 있는 리워드 포인트 등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죠.
물론 국내 법안의 경우 최근 정무위 소위서 상정돼 이제 본격적인 논의를 진행하는 단계인 만큼, 좀 더 명확한 정의를 위해 국회와 가상자산 업계의 소통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은 아직 유럽연합의 MiCA와 같은 구체적 업권법 없이 특정금융정보법과 금융위의 권고 사항을 기반으로만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법적 불확실성이 크다"라며 "입법 기관과 업계의 활발한 소통을 통해 법적 기반이 될 업권법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사실 전 세계 규제 당국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금세탁방지(AML)'입니다. 유럽연합 의회 역시 MiCA와 함께 1000유로 이상의 자금 전송을 제한하는 '자금 및 특정 가상자산 이전 규칙'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안을 통해 유럽연합에서 영업하는 가상자산 사업자들은 플랫폼 내 고객들에게 1000유로 이상의 자금 전송을 지원하려면 자금세탁방지를 위한 고객 식별(KYC)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유럽연합은 자금 및 특정 가상자산 이전 규칙을 통해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전송은 지금까지 EU 법률 테두리 밖에 존재했지만, 국제가상자산자금세탁방지기구(FAFT)의 권고에 따라 도입한 자금세탁방지 및 테러자금조달(AML/CFT) 법안을 통해 범죄자들이 가상자산을 악용해 불법 수익을 세탁하거나 테러 활동에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방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법안을 통해 유럽연합 내 운영되는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가상자산(암호화폐) 전송의 출처와 수익자를 추적함으로써 범죄자들의 불법 자금 조달을 막겠다는 것입니다.
유럽연합 의회는 MiCA와 같은 날 통과된 자금 및 특정 가상자산 이전 규칙을 통해 자금 전송에 수반되는 정보에 대한 규정(2015/847)의 범위를 가상자산으로 확장했습니다. 이로 인해 가상자산 서비스 공급자(CASP)들은 가상자산 전송의 완전한 투명성을 위해 가상자산 전송자와 수신자의 이름, 주소, 생년월일, 계좌번호 등 모든 정보를 필수적으로 보관해야 합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MiCA와 자금세탁 방지 법안이 3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쳤기에 현재 가상자산 산업 트렌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으며, 탈중앙화 금융(DeFi) 등 일부 분야에서의 혁신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에 유럽연합은 법안 적용 이후 실제 케이스가 축적되면 적절한 2차 규제 조치를 통해 지속적인 업계 성장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어니스트 우르타순 유럽연합 의원은 "MiCA 법안이 최종 도입됐지만, 중요한 규제 문제들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규제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적절한 후속 입법 조치가 필요하다"라며 2차 규제 추진을 예고했습니다.
국내 시장에서는 유럽보다 한 발 빠르게 자금세탁방지 규칙이 시행됐습니다.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 등 국내 5대 거래소들은 지난해 3월 25일부터 각각 트래블룰 솔루션을 통해 100만원 이상의 가상자산 전송 내역과 전송자·수신자의 정보를 관리하고 있죠. 업비트와 고팍스는 람다256의 베리파이바스프(VerifyVASP)를, 빗썸·코인원·코빗은 합작 법인 코드(CODE)의 솔루션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트래블룰 적용 직후에는 주요 거래소들이 다른 솔루션을 사용하면서 사용자의 거래소 간 자금 이체 마비, 48시간 내 출금 불가 등 투자자들의 불만 사항들이 나오기도 했으나, 도입 이후 1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은 투자자들도 어느 정도 트래블룰에 적용한 모습입니다.
추후 여기에도 유럽연합 MiCA·자금 및 특정 가상자산 이전 규칙, 국제 가상자산 규제 흐름, 국내 시장 상황 등 다수 요인을 반영한 2차 수정 규제안이 도입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MiCA는 가상자산 사업자를 가상자산 주문·자문 서비스를 포괄한 클래스 1, 가상자산 보관 서비스를 제공하는 클래스 2, 가상자산 거래·법정통화 교환 플랫이 포함된 클래스 3으로 나눴습니다. 각각 유형별 라이선스를 운영하고, 유형마다 필요한 자본금과 서비스 기타 요구사항들도 세세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거래, 자문, 평가, 수탁, 법정통화 전환까지 다양한 분야의 가상자산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들을 특성에 맞게 관리하기 위한 법적 기준을 세운 것이죠. 이외 가상자산 사업자가 백서를 발행할 경우 최소 20일 전 당국과의 공유를 권고하는 등 구체적인 서비스 행위에 대한 규정도 명시했습니다.
특히 스테이블코인 발행자에 대해서는 준비금 보유 요건, 일일 거래량 제한, 유럽은행당국(EBA)의 감독 등 세세하고 엄격한 규제 조항들을 제시했죠.
물론 국내 시장에서도 금융감독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이 가상자산 사업자 라이선스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라이선스를 세분화해 각각의 조건들까지 정의한 MiCA와 달리 거래업자와 기타업자 두 가지 사업자만을 분류하고 있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확장되는 가상자산 산업의 활동 분야를 모두 아우르기엔 아직까지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국회도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실질적 업권법의 입법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4월 국회 정무위 소위에서 상정된 가상자산거래법안(민병덕의원 대표발의)에는 금융위원회 산하 디지털자산금융위원회의의 설립과 디지털자산금융위원회가 운영하는 디지털자산금융사업 인가 제도를 통해 사업자들을 관리하는 조항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사업자들을 더욱 세세하게 관리·감독하겠다는 것이죠.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가상자산거래법안에는 △10억원 이상의 자기 자본 확보 △이용자 보호 인프라 구축 △충분한 출자 능력 및 건전한 재무 상태 △이해상충 방지 체계 등 조항들은 물론 디지털자산 사전 투자모집·공식 발행 거래 등에 대한 세부 사항들이 명시돼 있습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지금부터라도 가상자산 업권법 도입을 위한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라며 "산업을 제대로 키우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업자·소비자 보호 등 건전한 산업 성장에 필요한 조항들을 모두 포함한 포괄 법안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국내에서도 올바른 가상자산 산업 진흥을 위한 규제 프레임워크 구축에 힘을 쓰기 시작한 가운데 유럽연합의 MiCA 도입이 국내 가상자산거래법안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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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민 블루밍비트 기자 20min@bloomingbit.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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