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석유 공룡'들이 역대급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기업은 국제 유가 하락 속에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 배당금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팩트셋 집계 기준 미국 양대 석유기업 셰브론과 엑손모빌이 1분기 기준 483억달러(약 63조 85억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는 지난해 연말 대비 10억달러 정도 늘어난 것이다. 이 두 회사의 현금 보유액이 400억달러를 넘어선건 국제 유가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상 최고치인 배럴당 145달러를 기록한 직후 처음이다.
셰브론과 엑슨모빌 뿐 아니다. 이탈리아의 ENI, 프랑스의 토탈, 영국의 셸·BP 등 '빅오일'로 불리는 6개 회사의 1분기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600억달러에 달했다. 국영 기업과 중소형 석유 기업도 수십억 달러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가가 오를 때 석유 기업들은 현금을 쌓는다. 지난해 상반기 국제유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배럴당 110달러를 웃도는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빅오일' 기업들은 앞으로 국제유가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에 현금을 쌓아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들어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산유국의 감산 결정에도 국제 유가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 가격은 지난주 60달러 선으로 떨어졌다. 셰브론의 최고투자책임자(CFO)인 피에르 브레버는 컨퍼런스콜에서 "우리는 좋은 시기가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기업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지출을 늘리기보단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 배당금을 확대하고 자사주를 매입하는 등 주주 환원에 힘쓸 것이라고 WSJ은 전망했다. 올해 들어 S&P500 지수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 중 에너지 부문은 금융 부분과 함께 마이너스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인 탄소배출 감축 움직임, 경제성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제 유가 전망은 불투명해졌다.
석유 기업들은 배당금을 확대하면서 투자자를 유입해왔다.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벅셔해서웨이는 최근 꾸준히 셰브론 주식을 매입해 최대 주주 자리에 올랐으며 올해 10억달러 이상의 배당금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셰브론은 36년 연속 배당금을 늘렸다.
에너지 투자 회사인 도로시의 매니징디렉터인 밥 섬멜은 "그들은 오랜 시간 배당금을 지불했던 것이 특징"이라며 "지금은 배당금을 지급하고도 자사주를 매입할 수 있는 잉여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석유 기업들은 성장을 위해 투자 확대도 모색하고 있다. 엑손모빌은 미국 3위 셰일 기업 파이어니어 내츄럴 리소시스 인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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