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였던 배경 때문인지 그의 음악은 논리적이고 응집력이 강하다. 마치 작품에 진단을 내리는 듯한 깊은 통찰력이 돋보인다.”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격찬한 ‘고(古)음악의 거장’ 필리프 헤레베허(76·사진)가 한국을 찾는다. 그가 세계적 역사주의 악단인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하는 것은 2017년 이후 6년 만이다. 역사주의 악단이란 특정 작곡가의 작품을 그 시대에 사용하던 악기와 연주법으로 들려주는 오케스트라를 뜻한다.
1991년 프랑스에서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헤레베허는 현재 예술감독 겸 수석지휘자로 악단을 이끌고 있다. 이들은 오는 1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0일 부천 중동 부천아트센터 무대에 올라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와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을 들려준다.
내한 공연을 앞두고 한국경제신문과 서면으로 만난 헤레베허는 “모차르트 ‘주피터’ 교향곡과 베토벤 ‘영웅’ 교향곡은 계몽주의 정신과 희망, 고난과 시련을 딛고 일어서는 인간의 승리를 담고 있다”며 “팬데믹 이후 일상을 회복하고 있는 오늘날 세계인들에게 그 어떤 것보다 절실한 메시지”라고 했다.
“‘주피터’는 모차르트가 수많은 오페라를 작곡하며 발전시킨 극적인 요소와 대위법, 푸가 등의 작곡법을 집대성한 작품이에요. ‘영웅’은 베토벤의 대위법이 발전하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는 곡이죠. 제가 분석한 두 작품의 매력을 그 시대의 소리로 온전히 전하고 싶습니다.”
벨기에 출신인 헤레베허는 정신과 의사로 활동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의사 아버지와 음악가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그는 의대 재학 중인 1970년 역사주의 합창단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를 창단하며 본격적으로 지휘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의사로서의 경험이 지휘자로 성장하는 토대가 됐다고 했다. “의대에서 정신 의학을 공부한 것, 깊이 사고하는 법을 배운 것은 지휘자로서 근육을 단련하는 일과 같았어요. 분석적인 사고력과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가 지휘자로서 작품을 심도 있게 분석하는 근간이 될 수 있었죠.”
헤레베허는 고음악을 제대로 연주하기 위해선 ‘명료함’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곡이 탄생한 시대의 악기로 작품을 연주하는 것은 음악을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입니다. 구시대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에요. 단순히 옛 음악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 당대 악기로 더욱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음색과 메시지에 열중해야 고음악의 진정한 가치를 전할 수 있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훌륭한 지휘자의 조건은 무엇일까.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와 조화로운 연주를 선보일 줄 알아야 하고, 악보에 쓰인 그대로의 음악을 청중에게 전할 줄 알아야 하며, 악보에 담긴 정신적 의미까지 이해할 줄 알아야 해요. 결국 오케스트라와 한 몸이 돼 악보의 내면까지 표현할 줄 아는 지휘자만이 마에스트로(실력이 뛰어난 사람)의 자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헤레베허는 인터뷰 내내 자신이 얼마나 음악가의 삶에 몰두하고 있는지, 얼마나 큰 음악적 갈증을 느끼고 있는지를 드러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보편적인 해석에서 한발 더 나아간 새로운 연주에 도전하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현실과 삶 위에 존재하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많은 청중에게 전하고 싶어요. 그 과정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를 녹음하는 일이 이뤄진다면 더욱 좋겠지만요.”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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