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7일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홈페이지에 ‘함께 분노해 주시길 바란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조합비를 기존 월 1만원에서 500원으로 내릴 테니 노조에 가입해 힘을 실어달라는 내용이었다. 전삼노는 ‘노조원 1만 명 달성’이란 목표도 제시했다.
당시 8249명이던 노조원은 이달 8일 기준 9803명으로 늘긴 했지만 여전히 목표 미달 상태다. 최근 한 주간은 순증 조합원이 76명에 그칠 정도로 증가세가 둔화했다. 직원들 사이에선 “노조 외면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노조 외면 현상은 전삼노가 자초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4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나온 발언들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전삼노 부위원장은 “베트남에 가서 전 세계 140여 개 노동조합이 모인 곳에서 삼성의 악행을 낱낱이 알리고 올 생각”이라며 “회장 자택 앞 노숙 투쟁 등 향후 투쟁은 삼성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에 달렸다”고 회사를 압박했다. 상급단체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노련)의 김만재 위원장은 “국제적인 삼성 불매운동에 나서겠다”고 협박성 발언을 했다.
전삼노가 당초 설립 취지와 달리 정치색을 띠는 것에 대한 직원들의 경계심도 작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기자회견 주최 측엔 상급단체인 한국노총뿐만 아니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금속노동조합도 이름을 올렸다.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6400억원)은 전년 동기 대비 95.5% 급감했다. 주력 제품인 메모리 반도체 불황에다 스마트폰, TV 등 제품의 글로벌 수요가 감소한 영향이다. 2분기엔 ‘영업적자’를 낼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 카운터포인트리서치 등에 따르면 올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전년 대비 35.3%, TV 시장은 5.2%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불매운동 같은 움직임에 대해선 강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직원들은 “안 그래도 장사가 안되는데 삼성 불매는 선을 넘은 것 같다”, “자기 월급을 스스로 발로 차는 게 대응안?”, “회사 망하게 하고 정치 입문하는 게 목적인가” 등의 의견이 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계열사 노조들이 속속 삼성전자와 같은 ‘4.1%’ 임금 인상률에 합의하고 있는 것도 전삼노의 입지를 좁히는 요인이다. 1분기 삼성전자보다 나은 실적을 낸 삼성디스플레이 노조도 최근 사측과 4.1% 임금 인상안에 합의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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