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 아이스크림이 묻은 것 같다.”
서울 한남동 타데우스 로팍에서 전시 중인 마르타 융비르트(83)의 작품을 본 사람들 중 몇몇은 이런 감상평을 남긴다. 거친 선, 전반적인 형태, 널찍한 여백 때문이다.
그렇다고 작품 수준이 낮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영국 예술사에 길이 남은 거장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1775~1851)의 그림도 당대에 “랍스터 샐러드 같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있으니까.
실제로 융비르트는 수십년간 유럽 미술계에서 인정받아온 오스트리아의 주요 원로 작가 중 한 명이다. 오스카 코코슈카 상을 비롯해 권위있는 상을 여럿 받았고, 1977년 카셀 도큐멘타 6 전시를 비롯해 화려한 전시 이력을 자랑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그의 작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면 조금 공부가 필요하다. 먼저 작품 주제와 소재. 그는 자신의 여행 경험과 신화, 역사 등을 주요 소재로 삼아 누런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린다. 깨끗하고 비싼 흰 종이는 거부한다. “누군가 사용한 적이 있는 종이가 역사를 품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는 설명이다.
그리는 방식도 붓질을 비롯해 얼룩과 스크래치, 손가락 자국 등 다양하다. 이 때문에 그의 그림에서는 구상과 추상의 경계가 모호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단순한 색과 거친 형상에서 특유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자신의 그림에 여백이 많은 이유에 대해 작가는 “그림이 너무 많으면 형상이 품고 있는 에너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데, 관람객이 읽어낼 수 있는 선에서 작업을 멈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 주제는 ‘염소 눈 마주하기’. 최근 작가가 ‘꽂힌’ 스페인 회화 거장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가 염소를 주제로 한 작품을 자주 그린 데서 착안했다. 다른 동물과 달리 염소의 눈동자는 직사각형이다. 덕분에 다른 동물들보다 시야가 넓다.
작가는 “나 또한 그림을 그릴 때 실제 본 그대로 그리지 않고 다른 시각으로 보려 한다”며 “그런 점에서 염소와 내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작가에게 요즘 관심사를 묻자 “계속 그리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전시는 6월 10일까지 열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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