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4.5억 폭락"…역전세 속출에 세입자도 집주인도 '비명'

입력 2023-05-10 08:34   수정 2023-05-10 10:39


"아파트라서 안전할 줄 알았는데 집값이 전셋값이 떨어졌네요. 보증금 문제 없겠죠?"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 아파트에서 '역전세'가 쏟아지고 있다. 주택 가격이 급락하면서 전셋값이 계약 당시보다 하락해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기존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을 말한다.

심지어 매매가격이 전셋값보다 낮아지는 '깡통전세'도 속출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하반기 역전세가 더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상 현상이 매매시장으로 옮겨붙으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 있는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경고했다.

10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강동구 상일동 '고덕아르테온' 전용 84㎡는 지난 6일 7억5000만원에 전세 갱신 계약을 맺었다. 2년 전 보증금인 9억원보다 1억5000만원 낮아졌다. 같은 동에 있는 '고덕롯데캐슬베네루체' 전용 59㎡도 지난 2일 5억원에 전세 갱신 계약을 체결했다. 종전 계약 6억5000만원보다 1억5000만원 내린 수준이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전용 84㎡는 지난달 28일 9억8000만원에 전세 갱신 계약을 맺었다. 이 집은 2년 전 12억5000만원에 계약을 맺었는데 2년 만에 2억7000만원이 하락했다. 가락동에 있는 '헬리오시티' 전용 110㎡도 지난 2일 11억5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갱신했다. 종전 계약 16억원보다 4억5000만원 내린 수준이다.

잠실동에 있는 A 공인 중개 관계자는 "2년 전보다 전셋값이 크게 낮아진 게 사실"이라면서 "당장 세입자에게 전세 보증금을 내줄 현금이 없는 집주인들은 생활안정자금 등 대출을 통해 주기도 하는 등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라고 했다.


심지어 전셋값이 집값보다 높은 '깡통전세'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부동산 정보제공 앱(응용프로그램) 아파트 실거래가에 따르면 경기도 평택시 세교동 '부영1단지' 전용 59㎡는 지난 3월 1억67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는데, 4월 1억7200만원에 신규 전세 계약이 맺어지면서 매매 가격과 전셋값이 뒤집혔다.

충남 천안 서북구 백석동에 있는 '백석마을아이파크' 전용 84㎡도 지난달 1일 2억6900만원에 매매 계약을 맺었는데, 같은 달 15일 3억1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되면서 전셋값이 4100만원 더 높은 '깡통전세'가 됐다.

경기도에 있는 B 공인 중개 관계자는 "최근 집값이 빠르게 하락하면서 갭투자를 묻는 문의가 조금씩 늘고 있다"며 "투자자들이 자신들의 자금을 크게 넣고 싶어 하지 않다 보니 매매 가격과 전셋값의 차이가 좁혀진 계약들은 물론 전셋값이 오히려 높은 계약들도 맺어졌다"고 했다.

이런 역전세 현상은 하반기엔 더 많아질 수도 있다. 2년 전인 2021년 하반기엔 매매 가격 급등에 따라 전셋값도 고점을 기록해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국 전세가격지수는 2021년 6월 처음으로 기준선인 100을 넘은 이후 지난해 1월 103.3으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김진유 경기대 교수는 "하반기엔 2년 전 전셋값이 고점이던 시기 맺어진 다수의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데, 최근 시장에서 전셋값이 지속 하락하는 점을 고려하면 역전세 문제가 더 심화할 수 있다"며 "최근 일부 지역에서 집값 하락에 따른 갭투자도 다시 성행하고 있는데 이는 역전세, 깡통전세 등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를 막을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당장 만기가 도래하는 주택들의 역전세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며 "임대인들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원활하게 돌려줄 수 있도록 대출을 확대하는 것이 유일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부동산 시장 참여자들이 안전하다고 인지하고 있는 아파트 시장에서도 이상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면서 "전세 시장에 나타난 이상 현상이 매매 시장에도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경고했다.

부동산 중개업체 집토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월세 갱신 계약 중 종전 계약보다 감액한 계약 비율이 25%까지 치솟았다. 국토부가 관련 통계를 조사하기 시작한 2021년 이후 최고치다. 유형별로는 아파트의 감액 갱신 비율이 31%로 가장 높았다. 연립·다세대 주택은 갱신 계약 중 13%가 감액해 갱신했다. 오피스텔은 10%, 단독·다가구 주택은 6%였다.

감액 갱신 계약이 늘어난 것은 '역전세난' 때문이다. 집주인이 동일 조건으로 새 계약을 맺기 어려운 상황에서 세입자와 합의해 종전보다 낮은 금액으로 재계약을 하는 것이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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