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發) 주가 폭락 사태를 수사하는 검찰이 일부 투자자가 라덕연 호안투자자문 대표의 투자종목을 비밀리에 따라 한 일명 ‘카피 투자’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내용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투자자의 가족 등 주변 인물로 수사 범위를 넓히고 있다. 수사 결과에 따라 라 대표에게 투자금과 휴대폰을 맡겼다가 손해를 본 투자자의 공범 여부가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단장 단성한)과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합동수사팀은 최근 라 대표에게 휴대폰과 증권계좌 등 개인정보를 제공한 투자자 중 일부가 주가조작 의혹을 받는 대성홀딩스와 서울가스 등 8개 종목을 알아내 투자 패턴을 따라 한 정황을 확인하고 진상 파악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토스, 카카오페이 등 금융 플랫폼이 운영하는 마이데이터 서비스에서 본인 명의의 휴대폰으로 라 대표의 투자 종목을 알아낸 뒤 가족 및 지인 등 차명 계좌로 재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라 대표의 투자 패턴을 따라 하면서 수억원에 이르는 수익을 내고 수수료까지 아낀 것이다. 라 대표는 수년간 투자종목과 패턴을 공개하지 않은 채 투자자의 수익금 중 절반가량을 수수료 명목으로 받아왔다. 마이데이터 서비스는 증권사와 은행 등 여러 곳에 흩어진 개인의 자산정보를 한곳에 모아 볼 수 있는 통합 관리 서비스다.
라 대표의 주가조작 의혹은 지난달 24일 프랑스계 증권사인 SG증권에서 매도 물량이 쏟아져 서울가스 대성홀딩스 등 8개 종목의 주식이 폭락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검찰은 라 대표가 투자자로부터 휴대폰과 증권계좌 등을 넘겨받아 미리 정해둔 매수·매도가로 주식을 사고파는 통정 거래를 통해 약 3년에 걸쳐 이들 종목의 주가를 부풀린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라 대표와 투자자들의 휴대폰 등 관련 증거물을 포렌식하는 등 정밀 분석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달 27일부터 이들이 통정 거래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휴대폰 200여 대 등 관련 증거도 경찰에서 넘겨받았다”며 “분석 작업이 마무리되면 공범과 피해자를 구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원은 이날 라 대표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한 뒤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9일 라 대표를 자택 인근에서 체포했다.
법조계에서는 투자자가 시세조종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했는지 여부를 입증하는 게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돈을 잃은 피해자라고 주장하더라도 시세조종 가능성을 알고 신분증과 휴대폰을 맡겼다면 주가조작 공범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휴대폰을 맡기고 대리 거래하는 행위 자체도 전기통신사업법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투자자가 주가조작에 대한 내용을 알고 있었다면 방조죄 등 공범으로 수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라 대표에게 투자를 일임했다가 폭락 사태로 피해를 봤다는 투자자 66명은 9일 법무법인 대건을 통해 라 대표 등 6명에 대한 고소·고발장을 검찰에 제출했다. 이들 가운데 63명은 본인 명의의 휴대폰도 라 대표 측에 넘겼다.
권용훈/이광식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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