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년 스코틀랜드 동부 해안도시 세인트앤드루스. 골프 발상지로도 유명한 이 지역에 살던 가난한 대학생 로버트 패터슨은 골프공을 살 여유가 없었다. 당시에는 소가죽 안에 거위 깃털을 채워 만든 값비싼 ‘페더리’(왼쪽 두 번째) 공으로 경기했기 때문이다.
패터슨은 소포 충격 흡수제로 주로 사용되던 나무 진액 덩어리에 주목했다. 동남아시아에 자생하는 나무 진액을 물과 함께 끓인 뒤 식혀서 만든 ‘구티’(구타페르카·세 번째) 공은 가격이 저렴했다. 패터슨과 친구들은 구티 공을 만들어 골프를 치기 시작했다.
구티 공에도 단점이 있었다. 골프를 치다 보면 공에 쉽게 흠집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곧 골퍼들은 흠집이 생긴 공이 더 멀리, 더 똑바로 날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골프공 제조업자들은 망치와 끌로 공의 표면에 흠집을 내기 시작했다. 오늘날 골프공의 상징인 딤플(보조개)이 탄생한 순간이다.
무게 45.95g 직경 42.67㎜의 골프공이 320야드(약 290m)씩 날아갈 수 있는 이유는 딤플에 있다. 비행 중인 골프공은 공기의 저항을 받는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골프공의 앞면을 때린 공기는 공 뒷면에 이르렀을 때 속도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공 앞면과 뒷면 사이의 압력 차이 때문이다. 속도가 떨어지는 공기는 공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다. 이를 ‘형상저항(form drag)’이라고 부른다.
공 표면에 오목하게 팬 딤플은 공기 소용돌이인 ‘난류(turbulence)’를 만든다. 난류는 공 뒷면에서 공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 공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든다. 공 앞면과 뒷면의 압력 차이를 분산하면서 형상저항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딤플의 수는 많을수록 좋을까. 과거 공 한 개에 1000개가 넘는 딤플이 있는 공이 나온 적도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대략 300~450개 정도를 이상적인 딤플 수로 보고 있다. 타이틀리스트 골프공 ‘프로 V1’에는 총 388개, ‘프로 V1 X’에는 348개의 딤플이 있다. 볼빅의 골프공 ‘마그마’는 296개의 딤플을 갖고 있다. 공 표면에서 딤플이 차지하는 비율은 80% 정도가 일반적이다.
딤플의 모양과 배열 방식은 골프공 제조사마다 다르다. 각 제조사는 4면체, 8면체, 12면체, 20면체 등으로 구면(球面)을 나눈다. 캘러웨이는 벌집 모양의 6면체로 딤플을 제작하고 있다.
타이틀리스트의 경우 1973년 20면체 구조로 공을 제작한 이후 28년간 이를 유지하다 2011년부터 4면체 구조로 바꿨다.
딤플을 배치하는 것에도 과학적 원리가 있다. 골프공은 거리도 중요하지만, 일관성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의 중심축을 기준으로 양쪽이 같은 패턴을 갖도록 딤플을 만든다. 딤플이 한쪽에 치우치면 공의 탄도를 예측하기 어렵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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